[아,저詩]김춘추의 '요셉병동'

아가야 , 온 몸에/흰 피만 불어나는 아가야//나는 여윈 너의 엉덩뼈에/쇠못을 박고/밤새 영안실 모퉁이에 기대 우는/귀뚜라미이거나 혹은 어둠을/보듬고 눈 뜨는 올빼미가 된다//수 천년도 더 묵은 전생에/이차돈의 업같은 걸 혼자 쓰고/하안 피만 도는/하얀 비둘기야//아무래도 나는 한 조각 꿈도/못 푸는 요셉이거나 황혼에/쐬주나 까는 애비일 뿐이구나//아가야, 뵈지 않는 쇠못을/보이는 가슴마다 꽁꽁/박고 간 아가야김춘추의 '요셉병동'■ 김춘추(1944∼) 시인은 백혈병 치료로 유명한 의사이다. 이 시는 정년퇴임을 맞아 출판한 자선시집에 실은 작품이다. 저 솜씨 좋은 의사의 손을 빠져나가는 어린 생명의 대책없는 죽음. 죽음은 신(神)이 쳐놓은 경계이기에 사람은 그 앞까지만 어떻게 해볼 수 있을 뿐이다. 이제 갓 태어난 생명을 다시 데려가는 뜻이 무엇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다. 죽음이 징벌이라면 이건 너무 억울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우유같은 흰 피만 돌아가는 기이한 천형 앞에서 시인은 신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무력한 의술을 한탄한다.공자가 인간의 마음 속에 들어있는 인(仁)을 말할 때, 가장 먼저 예를 든 것이 '우물에 막 빠지려는 아이'를 보고 구하려고 달려가는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측은함을 느끼는 것. 그 마음이 우리가 지닌 가장 귀한 바탕이란 얘기다. 논어의 마음과 한 의사시인의 통한(痛恨)이, 죽어가는 아이를 사이에 두고 수천년 시간과 머나먼 공간을 다 뛰어넘어 한 줄기로 흐르고 있지 않은가.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로 "왕이 되는 꿈을 꿨다"고 말했다가 형제들의 시기를 받아 죽을 고비를 넘기고 멀리 팔려가는 고난을 겪은 성서의 인물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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