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서강대 교수·탄소문화원장
최악의 전력 대란을 초래한 원전 비리를 뿌리 뽑겠다는 정부의 대책이 황당하다. 작년 3월 이후 5차례나 내놓은 원전 비리 대책들이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모든 책임을 정체도 불확실한 '원전 마피아'에게 떠넘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력을 포함한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는 산업통상자원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바로잡아야 한다. 천인공노할 비리를 저지른 실무자와 관리자들에게 엄중한 사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취임해 원전 비리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 분명한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을 면직하고 한수원의 임원과 간부들에게 일괄 사표를 제출하도록 만든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사태는 대단히 심각하다. 원전의 안전 운전을 책임질 수 있는 경험을 가진 현장의 관리자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자칫 가동 중인 원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신속한 대응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원자력 전문가와 기술자들을 무작정 원전 마피아로 몰아붙이고, 원자력계의 순혈주의를 뿌리 뽑겠다는 산업부 장관의 발언도 충분히 신중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원전의 안전 운전을 책임질 수 있는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인력의 양성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전국의 수많은 대학 중에서 원전 전문가를 양성하는 대학은 6개뿐이다. 그런 상황을 무시하고 원전 전문가들이 같은 대학 출신이라는 이유로 무작정 마피아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는 일이다. 원전 전문가의 관련 기관 재취업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피해를 보상하게 만들겠다는 발상도 성급한 것이다. 법조인과 고위직 경제 관료들의 재취업을 금지하는 일이 훨씬 더 시급하다. 결국 우리 정부가 기술직을 얼마나 하찮게 여기고 있는지가 분명하게 확인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창조경제는 공허한 꿈일 뿐이다. 산업부의 마녀사냥식 꼬리자르기의 파장은 심각할 것이다. 아무도 원치 않는 오지에서 온갖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원전의 안전 운전에 최선을 다했던 우리 원전 기술자들에게 원전 마피아라는 누명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천연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충분한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원전 이외에 다른 현실적 대안이 없다고 믿는 원전 전문가의 소신을 집단 이기주의로 몰아붙이는 사회 분위기도 견디기 어렵다. 결국 자신들의 전문성도 인정받지 못하고 사회적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우리 원전 기술자들이 이제는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세계화 시대에 기술자들에게만 알량한 애국심을 요구할 수는 없다. 유능한 원전 기술자의 양성에도 빨간불이 켜질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아도 이공계 기피가 심각한 상황에서 원자력 분야에 관심을 갖는 청소년은 더욱 빠르게 줄어들 것이다. 원전 비리의 근본적인 책임은 산업부에서 찾아야 한다. 원자력 산업계의 도덕적 해이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사태조차 파악하지 못했던 것은 산업부의 심각한 업무 태만이고 직무유기다. 국제적으로 요구되는 최소한의 감시와 견제 장치를 만들지 못했던 책임도 무겁다. 국제적 압력 때문에 뒤늦게 만든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아직도 제 기능과 역할을 하지 못한 책임도 엄중하다. 이번에도 산업부가 원전 재가동 여부 결정에서 원안위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월권을 했다는 지적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멀쩡하던 전력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버린 2001년의 '전력산업구조개편', 1990년대 말부터 밀어붙였던 '연료소비 현대화 계획', 그리고 2011년 이후의 황당한 '기름값 대책' 등 이들 모두 산업부의 엉터리 에너지 정책이었다.이덕환 서강대 교수·탄소문화원 원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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