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고깔을 쓰고 하늘색 도포를 입은 만신(萬神)이 항아리 위에서 두발을 모아 총총 뛰어오른다. 징과 장구, 피리가 울리는 음악에 맞춰 빙글빙글 춤을 춘다. 단오를 맞아 용왕신에게 복을 비는 제의다. 만신은 장장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8벌이 넘는 각양각색의 의상을 갈아입고 나와 다채로운 춤과 재담을 펼쳐놓는다. 무대 배경으로 그려진 산신 할아버지, 선녀신, 마마신, 장군신, 대감신 등 온갖 신들에게 살아있는 인간의 장수와 복을 기도한다. 만신이 벌이는 신명나는 굿 한판에 관객은 깔깔 웃기도 하고, 재담에 맞춰 추임새를 넣기도 하며 박수를 친다. 몇몇은 무대 앞으로 나와 만원짜리, 오만원짜리 지폐를 그의 옷섶 안으로 쑤셔 넣기도 한다. '소통의 굿' 한판이 관객과 연희자들을 하나되게 했다. 지난 15일 국립민속박물관 대강당의 현대식 무대에 '단오맞이 굿'이 벌어졌다. 음력 5월 5일 단오 주간을 맞아 준비된 것이다. 인왕산 신과 칠성신, 대감신들을 불러 놓고 굿을 벌인 주인공은 이용녀 만신(사진·여ㆍ53)이다. '단오 굿'은 파종을 하고 모를 낸 후 약간의 휴식기를 맞아 하루 마음껏 놀이를 즐기는 단옷날 벌이는 굿이다. 이씨는 "집안의 평안과 무사태평, 무병장수의 뜻으로 치르는 단오굿은 앞으로 다가올 초, 중, 말복도 잘 넘어가게 해달라고 비는 의미도 있다"면서 "단오굿이란 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매년 열두달 선조들이 베풀었던 굿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27살에 무속인의 말문이 터지고 나서 신내림을 받아 26년째 굿을 하고 있는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0호 황해도 평산 소놀음굿의 이수자이기도 하다. 그는 점점 우리 전통 굿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이날 200석의 객석은 가득 찼지만 젊은이들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이씨는 "굿은 복을 빌고 액운을 물리치는 걸 기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제물을 함께 먹으면서 건강을 되찾고 바쁜 일상에서 마음을 한 박자 가다듬는 것이기도 하다"라며 "현대인들은 너무나도 바쁘게 앞만 보고 살아가는데 '굿을 잃어버리는 것'은 세상을 잃어버리는 것과 똑같다"고 말했다. "아무리 일류대학을 나오고 세계 언어를 다 공부한다 해도 우리 문화와 전통을 모르면 바보가 되는 거예요." 그는 "외국에서 우리 굿을 선보일 때 관객들의 환호와 기립박수는 잊을 수가 없다"며 "우리 것에 대한 놀라움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가슴으로 전달된다"고 말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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