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SV에서 뛰는 손흥민이 요즘 말로 빵 터졌다. 손흥민은 13일 밤 코파스 아레나에서 열린 2012-13시즌 분데스리가 29라운드 마인츠 05와 원정경기에서 후반 16분과 36분 시즌 10호, 11호 골을 연거푸 터뜨리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두 번째 골은 이날 경기의 백미였다. 하프라인 근처에서 밀란 바델리(크로아티아)의 도움을 받아 40여m를 드리블 질주한 뒤 수비수 니콜셰 노베스키(마케도니아)와 골키퍼 크리스티안 베트클로(독일)를 제치고 가볍게 밀어 넣었다. 시즌 11호 골. 이로써 손흥민은 차범근, 설기현, 박지성, 박주영에 이어 다섯 번째로 유럽 리그에서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한 한국인 선수가 됐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선 차범근에 이어 두 번째다. 이날 경기에 나선 함부르크의 선발 멤버 가운데 독일 선수는 골키퍼 레네 아들러 등 4명뿐이었다. 21살의 손흥민은 미드필더 라파엘 반 더 바르트(네덜란드)를 비롯해 잉글랜드, 노르웨이, 체코, 터키 등 7개 나라(협회) 선수들과 팀워크를 이뤄 승리를 맛봤다. 득점 순위도 11위에 랭크됐다. 나이를 믿을 수 없는 놀라운 활약상이다. 글쓴이는 손흥민이 18세일 때인 2010년 11월 박지성과 유도선수 조민선을 ‘계단형’ 선수로 일컬으며 이들과 비슷한 성장 과정을 밟을 선수로 그를 소개한 적이 있다. 2009년 11월 나이지리아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17살 이하 남자 월드컵 경기 장면을 보면 추천한 까닭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당시 손흥민은 계단을 차근차근 오르는 게 아니라 두서너 개씩 뛰어오를 것 같단 느낌이 들었다. 손흥민은 이 대회 한국이 치른 다섯 경기에서 세 골을 넣었다. 3-1로 이긴 조별 리그 F조 우루과이전에선 결승 골, 2-0으로 완승한 알제리 전에선 추가 골을 터뜨렸다. 1-3으로 져 4강 진출엔 실패했지만 나이지리아와 치른 8강전에선 0-1로 뒤진 전반 40분께 25m 중거리 슛으로 동점 골을 넣었다. 득점은 대회에서 나온 인상적인 골 5위에 올랐다. 이 대회에서 한국이 8강에 오른 건 1987년 캐나다 대회 이후 22년 만이었다. 캐나다 대회 8강 멤버는 신태용, 노정윤, 서정원 등 한국 축구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선수들이다. 손흥민은 이 대회 직후 함부르크 유소년 팀에 입단했다.
손흥민[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손흥민이 이후 3년여 동안 압축 성장 과정을 밟을 수 있었던 건 시대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1978년 12월 국내 스포츠계는 차범근의 서독 분데스리가 진출 소식으로 떠들썩했다. 1962년 백인천이 일본 프로 야구 도에이 플라이어즈에 입단한 이후 가장 큰 화제를 모은 뉴스였다. 당시 차범근의 나이는 20대 중반인 25세였다. 1972년 19세의 나이로 국가대표로 뽑힌 차범근은 1976년 제6회 박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말레이시아전에서 인상 깊은 활약을 펼쳤다. 후반 7분을 남겨 놓을 때까지 1-4로 뒤지던 경기에서 세 골을 몰아쳐 4-4 무승부를 만들었다. 탈 아시아 수준의 경기력을 뽐냈으나 그 무렵 한국 축구의 활동 무대는 아시안컵, 메르데카배대회, 킹스컵, 박대통령배대회 등 아시아 지역에 한정돼 있었다. 축구의 본고장인 유럽 무대로 갈 기회를 잡기에 어려운 여건이었다.차범근은 1978년 5월 도쿄에서 열린 재팬컵 등에서 유럽 스카우트들에게 기량을 보일 수 있는 몇 번 되지 않는 기회를 살렸다. 그 덕에 그해 12월 분데스리가 다름슈타트와 가계약을 맺고 한국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유럽 리그에 진출했다. 손흥민이 나섰던 FIFA 17세 이하 남자 월드컵은 제1회 중국대회(1985년)부터 유럽 클럽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단번에 끌어 모았다. 손흥민이 18세의 어린 나이에 유럽 리그로 향할 수 있던 배경이다. 물론 한국 축구가 그만큼 성장했단 방증이기도 하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골프스포츠부 이종길 기자 leemean@ⓒ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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