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의 ‘특별한 외출’

[아시아경제 장승기 기자]68년 만에 초등학교 졸업식서 ‘조각난 기억’ 되찾아
14살의 어린 나이에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할 수 있다”는 말에 속에 근로정신대에서 혹독한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한 소녀가 68년 만에 특별한 외출에 나선다.일제강점기 어린 나이에 일본에 끌려가 노역에 시달리고, 광복 후에는 주변의 편견 속에 남다른 삶을 살아야 했던 한 할머니가 초등학교 졸업식을 통해 ‘조각난 기억’을 되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일제의 폭압이 극에 달했던 1944년 5월, 이 당시 14살의 어린 소녀였던 김재림 할머니(84·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는 고향 전남 화순을 떠나 광주의 한 친척 집에서 가사 일을 돕고 있었다.이 때 김 할머니는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할 수 있다”는 지인의 말에 속아 무작정 일본행에 나섰다.하지만 일본에 가면 ‘공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기대에 그쳤다. 김 할머니는 군수업체 미쓰비시중공업이 운영하는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서 어린 나이에 허기에 치친 몸으로 혹독한 강제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김 할머니의 정신적 고통은 해방 후 고국에 돌아와서까지 지속됐다. “일본군 위안부가 아니었느냐”는 편견과 오인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어린 나이에 일본에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광복 후에는 주변의 편견 속에 남다른 삶을 살아야 했던 김 할머니에게 어린 시절은 ‘조각난 삶’, ‘조각난 기억’ 뿐이었다.이런 김 할머니에게 68년 만에 조각난 어린 시절 기억을 다시 꿰맞출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초등학교 졸업에 대한 기억조차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고 있던 할머니에게 이 같은 사연을 들은 ‘근로정신대 시민모임’이 ‘조각난 기억 찾기’에 나섰다.‘근로정신대 시민모임’은 김 할머니와 함께 모교인 화순 능주초등학교를 방문해 문서고에 있는 학적부를 찾아 1944년 3월 31회 졸업생 명단에서 창씨개명 된 김 할머니의 이름을 확인했다.역사의 격랑 과정을 거쳐 오느라 조각난 기억만을 간직하고 있는 할머니의 사연을 접한 능주초교는 19일 ‘100회 졸업식’에서 할머니에게 졸업장을 수여해 할머니의 고단한 삶에 위로와 용기를 전하기로 했다.졸업장을 다시 받게 된 김 할머니는 “고향 역을 지나갈 때 어머니에게 말씀도 제대로 못 드리고 일본으로 끌려간 상황을 떠올리니 눈물이 난다”며 “오늘 같이 기쁜 날이 없다. 해방 68년 만에 졸업식에 다시 선다고 하니 새 신부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눈시울을 붉혔다.한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일제강점기 학교 재학 중 어린 나이에 일제에 강제 동원 돼 학기를 마치지 못한 피해자들의 사연을 접수해 명예회복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08년 전남 나주초등학교는 6학년 재학 중 1944년 미쓰비시중공업에 강제동원 된 양금덕 할머니 등 2명에 대해 명예 졸업장을 수여했으며, 같은 해 전남 순천남초등학교는 일본 군수업체 (주)후지코시 강재공업에 동원된 근로정신대 피해 김정주 할머니에게 졸업장을 재발급해 위로한 바 있다. 이날 졸업식에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김희용·김선호 공동대표를 비롯해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등도 동행할 예정이다.장승기 기자 issue9899@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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