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안젤라 아렌츠(52ㆍ사진)가 2006년 최고경영자(CEO)로 임명되었을 당시 버버리는 갈피를 못잡고 있었다. 대다수 명품 브랜드가 고속 성장하고 있었지만 버버리는 유구한 역사와 트렌치코트라는 대표적인 상품에도 연간 매출 성장률이 겨우 2%를 기록했다.
아렌츠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임원들과 처음 전략회의를 가질 당시 깜짝 놀랐다. 임원 60여명이 회의에 참석했지만 어느 누구도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대폭 할인 받는 버버리 최고 경영진마저 자사 제품을 사지 않는다면 누가 제값 주고 사겠느가"라는 의문이 들었다는 것이다.아렌츠는 버버리 해외 지점들을 돌아다니다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당시 버버리는 세계 23곳과 라이선싱을 체결해 각기 다른 제품들이 선보이고 있었다. 각 제품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거나 색다른 느낌을 주진 못했다. 아렌츠는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것이라면 럭셔리 제품이 아니다"라며 "그러나 버버리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상품이 돼가고 있었다"고 떠올렸다.그래서 그는 버버리를 바꿔버렸다.그는 애플, 스타벅스와 같은 제품들의 경우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최고의 브랜드를 만들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버버리가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디자이너 아래에서 모든 제품이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이를 위해 패션 브랜드 도나 카란에서 함께 일했던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베일리를 버버리로 영입해 버버리의 모든 디자인을 총괄하는 ‘디자인 차르’로 임명해 모든 디자인은 그의 승인을 거치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주력 이외의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들을 정리하고 디자인팀들을 통합하기 시작했다. 흔히들 루이뷔통 하면 가방 구찌 하면 가죽제품 식으로, 명품 사업체의 경우 하나의 특징적인 상품군에서 탄생해 생산하는 제품군을 다변화하는 것에 주목했다. 더욱이 상품들이 다변화 됐더라도 매출의 대부분은 핵심 제품군에서 나오기 마련이었다. 반면 버버리의 경우 그동안 자신의 최대 강점이었던 핵심 상품군인 트렌치코트를 등한시 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렌츠는 버버리의 가장 큰 유산인 '전통', '영국적인 것'을 강화해 나갔다. 제품에 역사적 전통을 불어넣어주면서 새로운 변화까지 반영하는 식으로 재편해 나간 것이다.버버리 브랜드를 트렌치코트 중심으로 정립한 뒤 상품 다변화에 나선 아렌츠의 전략은 적중했다. 그녀의 취임 이후 버버리의 매출은 두 배로 늘어 30억달러(3조1899억원)에 이르렀고, 영업이익은 다섯 배 늘어 5억달러가 됐다. 하지만 직접적인 변화는 버버리 임원들의 옷차림에서 찾을 수 있다고 아렌츠 CEO는 말한다. 임원들의 경우 버버리 트렌치코트가 8~9벌이 되며, 모든 직원들이 여러벌의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영국의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아렌츠의 버버리 CEO 취임 당시 그를 전형적인 중서부인 라고 조롱했다. 영국의 버버리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버버리를 가장 영국적인 브랜드로 만들어 새로운 전성기를 열었다. 나주석 기자 gonggam@<ⓒ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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