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스토리]임금님 마실 물대던 곳..이젠 카페 '물 좋은' 동네

스토리텔링 서울 27. 삼청동 일대

총리공관 입구 앞 카페와 화랑 등 집들이 언덕위까지 들어서 있는 삼청동 모습.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데이트 코스로 유명한 서울 삼청동. 종로구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북촌마을 내 서쪽에 자리한 동네다. 이곳은 아기자기한 가게들과 곳곳에서 눈길을 끄는 근대식 한옥들 그리고 골목길의 재미가 있다. 그런데 이뿐만이 아니다. 두 궁궐을 양편에 둔 삼청동은 조선과 근대의 흔적들이 구석구석 숨어있기도 하다. 조선의 명사들이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시로 읊기도 했고, 장인들이 궁궐에서 쓰일 각종 물품들을 만들어 공급한 곳도 또한 이곳이다. 여기에 조선말 군사훈련과 근대식 무기제조의 핵심공간이었던 기기국 번사창도 그대로 보존돼 있다. 최근 삼청동은 너무 상업적으로 변질돼 간다는 뭇매를 맞고 있다. 가게들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서면서, 이곳에서 여유와 옛 정취가 사라지고 있다는 아쉬움에서다. 그 아쉬움의 근저에는 삼청동이 가진 전통과 역사도 내포돼 있다. 도성의 북쪽에 해당한 삼청동은 산과 물, 인심이 맑아 '삼청'(三靑)이란 이름이 붙었다. 지난 2일 영하 10도 이하의 강추위 속에 눈으로 덮인 삼청동을 찾았다. 삼청동 문화의 거리는 민속박물관 건너편 사간동부터 인근 안국동, 송현동, 소격동, 가회동, 팔판동, 화동까지를 모두 아우른다. 먼저 골목길 해설사 윤성기(남 66)씨와 화동 정독도서관 입구에서 만났다. 윤 씨는 "겉으로 보기엔 특이하고 예쁜 가게들만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삼청동은 골목 속에 담겨있는 옛 유적들이 수도 없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라고 말했다.정독도서관 앞에서도 조선시대 무기를 생산했다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화기도감터'였다. 화기도감은 임진왜란때 왜병의 조총에 맞먹는 무기를 만들기 위해 설치한 조총청을 확대 개편한 무기제작기구였다. 광해군 14년(1622년) 이곳에서 조총 900여정, 화포 90문을 만들었다고 기록돼 있다. 윤씨를 따라 정독도서관 왼편 위쪽으로 놓여있는 골목길에 들어섰다. 각종 액세서리숍과 옷가게가 양편으로 즐비하다. 북촌로5가길에 이어 좁게 오른쪽으로 연결된 북촌로5나길을 따라가다 보면, 인기척이 드문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 '장원서터'를 알리고 있는 표지석과 삼청동 주민들이 이용하는 목욕탕인 '코리아 사우나' 그리고 복정터(福井址)를 만날 수 있다. 사우나는 특히 붉은 벽돌의 긴 굴뚝으로 연기를 내뿜고 있어 찾기가 쉽다. 장원서는 궁중의 정원 관리와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유실수의 개발 등으로 지금의 원예연구소와 같은 역할을 했다. 특히 이곳에선 제주도에 있던 감귤을 남해안 지역에 이식하고 재배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복정은 조선시대 궁중에서만 사용하던 우물로, 평상시에는 자물쇠를 채우고 군인들이 지키며 일반인들의 사용을 금지했던 곳이다. 대보름에는 이 물로 밥을 지어먹으면 일년내내 행운이 따른다고 했다. 윤씨는 "복정 옆에 목욕탕이 생겼으니, 이제 삼청동 주민들 모두가 옛날 궁중에서만 썼던 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인데 삼청동 맑은 물의 내력을 알 수 있는 좋은 예"라고 설명했다.코리아사우나를 뒤로하고 다시 왼편 골목으로 향했다. 골목마다 전통공예 공방과 전통 찻집들, 식당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빼곡하게 상점들이 들어가 있는 작은 골목길을 벗어나 삼청파출소 인근 큰 대로인 삼청로에 당도했다. 삼청로를 따라 북쪽 백악산 방향으로 걷다보면 왼편으론 국무총리공관과 청와대로 가는 길목에 다다른다. 총리공관 앞길은 팔판동이다. 조선시대 여덟명의 판서가 살았다고 전해져 만들어진 이름이다. 8명의 판서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주요 관아가 가까이 있어 이곳에 주택지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윤씨의 해설이었다. 공관 맞은편인 삼청로 오른쪽 레스토랑과 카페들로 가득찬 언덕안에는 '삼청동천'이란 바위새김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말 무기를 제조하고 보관했던 기기국 번사창.

인수委 둥지 튼 금융연수원엔 조선시대 무기공장 옛 모습 보존총리공관을 지나 삼청로를 타고 계속 걷다보면 한국금융연수원이 보인다. 연수원 내엔 기기국 번사창(機器局 飜沙廠)이 있다. 연수원은 최근 18대 대통령 박근혜 당선인의 인수위원회가 둥지를 튼 곳이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방문 허락이 조금 까다로웠다. 연수원 입구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다보면 오른편에 특이한 형태의 건물이 등장한다. 1층 창고형 건물로 짙은 회색 벽돌로 이뤄져 있는데, 지붕 꼭대기에는 무기를 만들때 발생하는 오염된 공기를 배출하기 위해 한식기와를 얹었다. 벽돌쌓기 수법이나 처마장식, 창문형태는 중국풍이며 지붕틀 구조에도 기존 전통적 방식과는 다른 서양식 요소가 가미돼 있다. 이 건물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벽돌조 건물이면서 최초의 근대적 공장건물이다. 또 동양과 서양의 건축양식을 절충한 건물로 의미가 크다. 번사창은 1876년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지 8년 뒤인 1884년에 지어졌다. 당시는 무기의 근대화를 위해 근대식 군사훈련과 무기제조에 힘쓰던 시기로, 번사창은 탄약을 제조하고 무기를 보관하던 곳이다. 1984년에 해체보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번사(飜沙)란 흙으로 만든 거푸집에 쇳물을 부어 주조하는 것을 뜻한다. 번사창 앞에는 추운날씨 덕에 땅에 떨어지지 않고 나뭇가지에 언 채 매달려 있는 감나무 홍시를 까치들이 맛있게 먹고 있었다.

정조대왕이 음용했던 샘물. 백악산 가까이 자리한 삼청동 산동네 골목마을에 있다.

삼청로로 돌아가 다시 북쪽으로 올랐다. 백악산이 가까워지면서 지세도 차츰 가팔라졌다. 산동네 골목길로 들어서면 칠보사가 보인다. 이 절을 지나면 정조대왕의 수라상에 진상된 샘물을 발견할 수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이를 자랑거리로 여기고 아직도 음용하고 있다. 단 동절기에는 사용하지 않아 뚜껑을 덮어 잠가뒀다. 이곳 주변 동네에는 아랫마을과 다르게 아직 삼청동을 흐르는 물줄기가 복개되지 않은 상태였다. 백악산 높은 곳에서 산동네 마을로 개천이 여전히 흘러내렸다. 빨래터 흔적도 남아있다. 복개되기 전 삼청동 개천은 청개천까지 이어졌다.

백악산 인근 삼청동 산동네에는 복개되지 않은 삼청동 개천이 여전히 흐르고 있다.

큰 길과 작은 골목길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엉켜있는 삼청동. 화랑, 카페, 공방, 레스토랑, 액세서리숍 등 가게가 1000곳이 넘는 곳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맑은 우물과 샘, 고관들의 대궐, 근대기술의 보고 등 조선의 자취를 살필 수 있었다. 윤씨는 "삼청동은 고관들의 큰 대궐들이 많았지만, 일제강점기 당시 필지를 잘게 구획해 일본인들과 친일파들이 집장사를 했고, 한국 전쟁 이후에도 피란민들이 이곳을 찾아 계속 언덕 위로 집을 쌓아올렸던 동네"라며 "조선과 근현대를 아우르는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말했다.오진희 기자 valer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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