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넥센은 신인투수에게 기회의 땅이다. 아직 덜 탄탄한 선수층. 조금만 잘 던지면 기회는 찾아온다. 염경엽 감독도 신인 중용에 너그러운 편. 지난달 가고시마 마무리캠프에선 직접 젊은 피들의 훈련을 관찰했다. 당시 체크 대상 1호는 단연 조상우. 지난 신인지명회의에서 가장 먼저 넥센의 부름을 받은 신인이다. 염 감독은 “제구 등이 아직 1군에서 뛸 수준은 아니다. 스프링캠프를 치러봐야 안다”면서도 “묵직한 볼 끝에 몸 쪽 승부를 잘한다. 경험만 쌓는다면 좋은 선수로 거듭날 것”이라고 평했다. 조상우는 넥센의 형편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시작을 반이라 여기고 훈련에 매진한다. 이와 관련해 팀 동료들은 “가고시마 마무리훈련을 신기해하면서도 묵묵히 과제를 소화했다. 꽤 성실한 친구”라고 입을 모았다. 그들이 바라보는 조상우는 애늙은이다. 외모 영향이 크다. 거무스름한 얼굴은 동안과 거리가 멀다. 목소리도 가수 임재범처럼 굵직하다. 과묵한 성격은 덤. 그리 중요한 요소들은 아니다. 선수단 상견례 당시 선수들이 눈여겨본 부분은 따로 있었다. 탄탄한 하체다. 강윤구는 “허벅지가 장난이 아니더라”라며 놀라워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선수는 “탐이 난다. 저런 하체를 가질 수 있는 비결을 물어봐야겠다”라고 말했다. 손꼽히는 매력 요소는 하나 더 있다. 바로 성숙한 마인드. 한 선수는 “외모도 그렇지만 하는 행동도 애늙은이 같다”라고 했다. 자기 관리에 그만큼 철저해 보인단 의미. 조상우 본인의 생각은 어떨까.
“지금까지 했던 운동과는 많이 다르다. 대전고에선 밤 10시까지 훈련했다. 여기선 모든 걸 짧게 한다. 전혀 다른 패턴인데 보다 능률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 아마추어 때는 운동을 하고나면 늘 피곤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게 너무 행복하다.”사실 조상우는 꽤 힘든 아마추어 시절을 보냈다. 집은 인천 도화동에 있지만 멀리 떨어진 대전고를 다녔다. 인천 동산고를 다니다 개인 사정으로 2학년 말 전학을 갔다. 부모와 떨어져 지낸 시간은 결과적으로 약이 됐다. 숙소생활에 쉽게 적응하게 된 까닭. 박헌도, 신명수, 김민준, 이상호, 문우람 등과 함께 지내고 있는 조상우는 “선배들이 잘 해준다. 각자 알아서 할 걸 하는 분위기다. 따로 어려운 일을 시키는 선배는 없다”라고 했다. 이어 “대전고 때도 숙소생활이 편했다. 체질에 맞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야구를 처음 시작한 건 인천 서화초교 1학년 때. 의정부에서 인천으로 이사를 갔는데 유니폼이 멋있어 보인단 이유 하나로 글러브를 집어 들었다. 그라운드에서 그는 외롭지 않았다. 4살 많은 친형과 함께 야구부 생활을 했다. 동고동락은 길지 않았다. 각각 다른 중학교에 진학했다. 형은 동인천중, 조상우는 상인천중이었다. “처음엔 형이 다닌 학교를 가려고 했다. 입학 제의도 받았었다. 다른 길을 걸은 건 선배들의 구타가 심하단 소문 때문이었다. 소문이 거짓이라 해도 걱정 없이 야구에만 집중을 하고 싶었다.”당시 조상우가 맡은 포지션은 투수와 내야수. 하지만 야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마음은 투수에 있었다. 조상우는 “타석에서 배트를 휘두르는 것보단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게 훨씬 즐겁고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당시 수비수들에게 소리를 많이 질러 목소리가 굵어졌다”라며 수줍어했다.
사실 굵직한 목소리는 구경조차 하기 쉽지 않다. 낯을 많이 가리는데다 말수가 적은 까닭이다. 지난 신인지명회의에서 그는 우선지명 뒤 가장 먼저 이름이 불렸다. 순간 표정은 담담했다. 이어진 인터뷰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계속된 질문 공세에 간단한 소감만을 되풀이했다. 고민하며 내놓는 답 역시 비교적 짧았다. 그렇다면 실제 기분은 어땠을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1, 2라운드 내에 이름이 불릴 거란 예상은 했지만 잘하는 친구들이 많아 그렇게 높은 지명을 받을 줄은 몰랐다. 너무 얼떨떨해서 당시 인터뷰를 잘 못했던 것 같다. 솔직히 나중에 기사를 보고서야 높은 지명을 받은 게 믿겨졌다.”그럴 만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조상우는 축하보다 조언을 더 많이 들었다. 그 첫 발을 뗀 건 아버지. “프로에 진출했다고 끝난 게 아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1군에 빨리 진입할 수 있도록 정진해라”라며 아들의 들뜬 마음을 바로잡았다. 어머니도 “네 꿈의 일부만이 이뤄졌을 뿐이다. 원하던 것을 이룰 수 있도록 앞으로 열심히 해라”라며 조상우를 북돋았다. 조상우는 아직 프로무대가 낯설다. TV를 통해 보던 선배들과 부딪힐 때마다 떨림을 느낀다.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건 선수단 첫 상견례. 그는 “동기들과 밖에서 떨린단 이야길 나눴는데 내가 제일 못했던 것 같다. 막상 차례가 왔을 때 ‘조상우입니다’라고 인사만 하고 넘어갔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강윤구 선배가 인사하는 법이나 팀에서 지켜야 할 규칙 등을 친절하게 알려주셨다”라며 고마워했다.
적응이 어려운 부분은 하나 더 있다. 쏟아지는 팬들의 관심이다. 조상우는 “팬들이 날 알아볼 때마다 너무 신기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길거리를 지나다닐 때도 누가 나를 쳐다보는 느낌을 받는다. 프로선수가 된 이상 행동을 조심해야겠다”라고 덧붙였다.조상우는 이미 지난 10월 이를 실감했다. 한화에 입단한 조지훈과 모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나눈 대화가 의도치 않게 외부로 공개돼 곤욕을 치렀다. 당시 ‘넌 거지영웅’, ‘거지 팀에 들어갔으니 거지지’, ‘아니, 너 말고 넥센’ 등의 글을 적은 조지훈은 넥센 팬들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청소년대표팀 상비군 때 같은 숙소를 사용하며 친해진 친구다. 진심이 아닌 장난으로 쓴 글인데 어떤 분이 캡처를 해 일이 커져버렸다. 괜히 지훈이에게 미안하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 텐데. 팬들에게 오해를 사지 않도록 앞으로 주의해야겠다.”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할 곳이 있다. 바로 마운드 운용이다. 조상우는 최고 시속 150km의 강속구에 커브, 슬라이더, 반포크볼 등을 구사한다. 가장 으뜸으로 여기는 변화구는 슬라이더. 그러나 염 감독은 “제구, 떨어지는 각 등에서 아직 변화구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라고 평했다.
조상우는 내년 1월 스프링캠프에서 구속을 끌어올리는 한편 변화구를 가다듬을 계획이다. 새 무기 장착에 대한 욕심도 있다. 그는 “투심패스트볼을 배워보고 싶다. 그렉 매덕스처럼 던질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가장 좋아하나 군더더기 없는 폼의 윤석민 선배나 우리 팀 손승락 선배를 더 닮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당장의 목표는 개막전 엔트리 합류. 조상우는 “원래 목표를 두고 운동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저 열심히 하겠단 생각으로 훈련에 임한다”며 “언제 어디서든 마운드에 설 기회만 있다면 열심히 던지겠다”라고 각오를 밝혔다. 이어 “나중에 실력이 늘게 되면 꼭 선발투수로 뛰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정재훈 사진기자 roze@<ⓒ아시아경제 & 스투닷컴(stoo.com)이 만드는 온오프라인 연예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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