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의 질문 '그때 네가 왜 10번을 달았는데?'

[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축구팀에서 등번호 10번은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대부분 팀의 에이스나 스트라이커에게 주어진다. 일종의 영예와 같다. 1990년대 한국 축구대표팀 등번호 10번은 간판 공격수였던 최용수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달랐다. 유니폼엔 11번이 새겨있었다. 10번의 주인은 황선홍, 안정환 등 공격수들도 아닌 '꾀돌이' 이영표였다.10번이 팀의 에이스나 스트라이커의 소유물인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영표는 수비수인데다 당시 대표팀에서 어린 축에 속했다. 10번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수수께끼의 해답은 거스 히딩크 감독의 자서전에서 찾을 수 있다. 당초 히딩크 감독은 황선홍에게 10번을 줄 생각이었다. 후배들에게 노장의 든든한 면모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문제는 황선홍의 '월드컵 트라우마.' 앞선 세 차례 월드컵에서 황선홍의 활약은 기대 이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상상 이상의 부담에 시달렸다. 등번호의 무게까지 더하긴 곤란했다. '대선배' 황선홍이 마다한 번호를 다른 선수들이 받을 리는 만무했다.히딩크 감독은 "10번을 단 선수가 월드컵이란 큰 무대에서 부담을 가져 긴장할 수밖에 없겠단 생각을 했다"라고 밝혔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은 이영표였다. 수비수였지만 등번호 10번을 부여했다. 개인기가 가장 출중하고 항상 열심히 한다는 이유였다.표면으로 드러난 배경은 여기까지. 그렇다면 선수들이 가진 느낌은 어땠을까. 호기심은 10년 만에 당사자들에 의해 풀렸다. 2일 FC서울과 부산 아이파크의 K리그 경기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 최용수 서울 감독이 취재진과 경기 전 인터뷰를 하던 방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이영표였다. 미국 프로리그(MLS) 시즌을 마치고 귀국해 응원 차 친정팀 서울을 방문했다.이영표는 장난스럽게 방문 유리창을 손으로 친 뒤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최 감독는 "어유~ 이 코치~"라고 익살을 부리며 후배의 방문을 반겼다. 이영표가 방에 들어서자 최 감독은 취재진에게 "정말 대단한 선수"라고 치켜세운 뒤 "월드컵에서 내 등번호 10번을 달고 뛰지 않았나"라고 말해 좌중을 폭소케 했다. 이어 이영표에게 "도대체 그때 네가 왜 10번을 달았냐"라며 "아니 진짜, 나도 10년 만에 처음 물어보는 것"이라고 했다. 이영표의 대답은 걸작에 가까웠다. 그는 "그때 서로 10번을 안 달겠다며 미루고 미루다 결국 나한테 왔던 것"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이어 "솔직히 그런 엄청난 상황에서 누가 그 번호를 달려고 했겠냐"라고 반문했다.이영표는 재밌는 에피소드도 함께 털어놨다. 그는 "사실 상대팀도 당했었다. 10번이면 에이스 등번호인데, 웬 조그만 녀석이 10번 달고 나와서 저 밑에 풀백자리로 쪼르르 뛰어가니 얼마나 황당했겠냐"라고 너스레를 떨었다.전성호 기자 spree8@<ⓒ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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