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詩]이빈섬의 '여뀌'

향기랄 것도 없는/깨알뭉치 꽃/풀자락에 매달려 희끗불긋 떨다가/지나가는 나그네/이름도 묻지 않았는데/벌써 졌다/남들 사군자 칠 때/여뀌를 수놓던/사람이 있었다 무명천 조각 위/가운데를 피하여 숨어핀/평생 구석쟁이/몇 땀만 지나도/붉은 웃음 흰 웃음/두 여자 쯤 데리고 살던/옛이야기가 있다/물안개 아침과 비 듣는 저녁/무심도 그런 무심이 없지/매운 눈 껌벅이며 울었을/습한 여자여 그리움이 찌른 바늘/피 송송 돋아/여뀌가 남았다
이빈섬의 '여뀌'■ 사랑은 거저 오는 일이 없다. 제가 몸을 기울여 마음을 끓여 하는 것만큼만 사랑이다. 경기도 파주의 기생 홍낭 묘소에 갔다가 축축한 밭둑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여뀌를 보았다. 홍낭은 살아서 수천리, 죽어서 수천리, 그리운 임을 쫓아다녔다. 수백년 뒤엔 여뀌꽃으로 피었는가. 원망도 곱다. 꽃몸이 붉어졌다. 몇 년 전 수건에 여뀌만 수놓은 여인을 보았다. 인사동의 한 전시장에서 홍낭이 다시 떠올랐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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