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한국기업에 2% 부족한 어떤 것

[아시아경제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실버산업학 교수] 여수 엑스포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을 받았던 것은 '스위스관'이다. 입구를 들어서면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것 같은 좁은 길이 나있고 벽에는 물과 관련한 각종 질문이 쓰여 있다. "물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 쓰인 벽 앞에 서서 가만히 두 손을 모으면 손바닥에 고인 물(빛으로 물 효과를 냈음) 속에 어린아이가 나타난다. "물의 친구들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는 꽃과 나비, 잠자리 등이 나타난다. 길을 따라 정상으로 올라가면(약간 오르막길로 설계돼 있다) 거대한 IMAX 화면 속에 스위스의 유명한 산인 융프라우의 정상, 만년설과 크레바스의 모습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안내를 맡은 스위스인 도미니크는 서툰 한국말로 열심히 설명한다. "융프라우의 만년설은 봄이면 녹아 흘러내려서 유럽에 생명의 물줄기를 공급해 줍니다. 그런데 온실효과 때문에 만년설이 많이 사라져서 봄이면 흙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환경보호가 중요합니다." 융프라우의 시원한 풍경을 뒤로하고 다음 방으로 향하면 한국 고조선시대에 형성되었다는 '만년설'을 담은 유리관이 전시돼 있다. 한국의 건국시기까지 고려한 스위스 측의 세심한 배려가 느끼지는 대목이다. 만년설이 전시된 영하 5도의 추운 방에서 나와 밖으로 나가려는데 안내인이 물 한 잔을 권한다. 무심코 받아보니 물잔이 보통 종이컵처럼 되어 있지 않고 얇은 플라스틱 깔대기 형태로 되어 있어 두 손으로 받쳐 들지 않으면 물을 마실 수가 없다. 물을 공손하게 두 손으로 받아 마시면서 물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무언의 충고다.  주제를 '물-만년설-환경보호'라는 하나의 일관된 흐름으로 구성하는 창의적 아이디어와 능력, 주최국의 건국시기를 고려한 만년설의 공수, 서툴지만 한국말로 애써 설명하는 안내인, 마지막에는 두 손으로 물을 받쳐 마시게 해서 물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도록 만든 것에 이르기까지 수미일관하고 세련된 프레젠테이션이 돋보였다. 여수 엑스포에서 국내 대기업관 여기저기를 다 다녀봤지만 '디지털 기술의 향연'이 있을 뿐 주제의 일관성과 세련된 디스플레이, 감동과 정성까지 느껴지도록 종합적으로 설계한 기업관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여수 엑스포뿐만이 아니다. 국내 대기업들이 참여한 대규모 전자전이나 다른 엑스포에 가봐도 국내 기업은 '기술과 품질', 그 이상의 감동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관전평이다. 전시된 제품에는 품질의 우수성만 잔뜩 설명되어 있을 뿐 적극적으로 마케팅하려는 시도도 부족하고 세련미도 떨어진다. 국제전시나 엑스포 등에는 수많은 나라에서 비싼 참가료를 내고 업계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참가한다. '우수한 기술과 품질' 그 이상의 강렬한 인상이나 감동, 세련된 디스플레이와 프레젠테이션이 필수적이다. 지금까지 한국 기업들은 기술개발과 품질향상에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선진국을 따라잡기만 하면 되던 'catch-up' 시대에는 기술과 품질만으로도 충분히 고도 경제성장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우리의 뒤를 다른 나라들이 열심히 'catch-up'하고 있다. 특히 거대시장과 물량공세, 자본투입을 앞세운 중국의 한국기업 따라잡기는 생각보다 훨씬 바짝 다가와 있어 거의 위기수준이다.  중국에 따라잡히는 속도를 늦추려면 이제 우리 기업도 중국에는 없는 어떤 것, '기술 그 이상의 어떤 것'에 주목해야 한다. 창조적 디자인과 세련된 마케팅, 고급 이미지의 홍보, 고객의 니즈를 선제적으로 발견하고 제품을 설계하는 능력, 효율적인 유통채널 개발 등 현대 경영학이 주목하는 가치사슬의 상부구조를 품질과 결합시키지 못하면 중국의 한국추월은 얼마 안 가서 현실의 악몽이 될 것이다.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실버산업학 교수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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