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詩]김광렬 '행원(杏原)' 중에서

기계풍차가 공룡 같다 둔중한 무게로 덜컹덜컹 돌아간다 그 밑을 지나다보면 날개가 파편처럼 튀며 내 목을 통조림 따듯 따버릴 것 같다/ 행원(杏原)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마을 끝에 쇳덩이들은 살고 있다 (……)/ 그래도 아래발치 풀밭엔 오종종 핀 쑥부쟁이들이 그나마 입김 따스하다
김광렬 '행원(杏原)' 중에서■ 하지만 행원은 제주도 북제주군 구좌읍에 있는 마을이다. 김광렬은 제주 토박이 시인이다. 행원에는 국내 처음으로 풍력발전소가 들어섰다. 바람 많은 제주에서도 가장 풍력이 세다는 그곳. 2003년에 풍차마을이 만들어지고 거대한 바람개비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풍력은 친환경 에너지로 환영받는 보통의 정서를 생각하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은 근경(近景)과 원경(遠景)의 차이로 읽는다. 멀리서 구경거리로 바람개비의 열주(列柱)를 바라보는 관광객의 눈은, 행원 마을의 상처를 읽어낼 수 없다. 현지에서 숨쉬며 살아가는 시인 눈에는 먼 언덕 바람개비가 아니라 흉물같은 쇳덩이들이 보인다. 기계날개가 사람 목을 딸 듯한 공포감, 차가운 손가락이 바람 허리를 자르는 소름돋는 소리. 접사(接寫)로 찍어낸 살풍경이다. 그러나 그렇게 가까이 들여다본 눈에는 하늘거리는 쑥부쟁이 또한 보이는 것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편집국 이상국 기자 isomis@ⓒ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