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욱│머릿속에 콕 박혀있는 노래들

배우에게 이미지 변신이란 늘 요구되는 과제일 수밖에 없다. 특히 각각 다른 작품들에서 비슷한 역할들을 연속으로 맡게 될 경우, 대중들에게 굳어진 이미지로부터 탈피할 수 있는 순간은 생각보다 더디게 찾아온다. 유난히 단호해 보이는 입매와 살짝 찌푸린 미간, 각이 도드라지는 얼굴형 때문이었을까. 주상욱 역시 MBC <깍두기>와 KBS <그저 바라보다가>, SBS <자이언트> 등에서 까칠하고 무뚝뚝한 ‘실장님’ 연기를 도맡아 하며 ‘실장님 전문배우’로 오랜 시간 각인됐다. 하지만 그는 지난 1월 종영한 OCN <특수사건전담반 TEN>의 ‘괴물 잡는 괴물’, 수사 팀장 여지훈 역을 통해 그동안 고정돼 있던 이미지에 대한 부담감을 스스로 떨쳐 버렸다. “제가 맡았던 역할들에는 기본적으로 반듯하다거나 엘리트라는 설정이 항상 깔렸었어요. 여지훈도 마찬가지였고요. 어떻게 보면, 이런 식으로는 이미지 변신을 할 수가 없죠. 정말 거지 역할 정도를 맡아야 연기 변신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텐데, 그런 걸 원하지는 않아요. 그저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것에서 디테일한 연기나 표정으로 충분히 다른 느낌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껏 진지한 인물들을 주로 연기했지만, 알고 보면 주상욱은 ‘진담보다 농담을 더 많이’ 하고, 인터뷰 도중 <특수사건전담반 TEN>에 함께 출연했던 김상호를 두고 “형 너무 사랑해요, 정말”이라 애교스럽게 말할 만큼 유쾌한 성격이다. SBS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에서 민망할 때든 어색할 때든 ‘핫핫핫핫’하고 웃던 허당스러운 매력 또한 그의 진짜 얼굴이다. 그 때문에 스스로 ‘깐족거림의 결정판’이라고 표현하는 MBC <신들의 만찬>의 최재하는 모처럼 주상욱에게 최적화돼 있는 역할이다. “깐족거리는 연기를 할 때는 제 실제 성격에 더 가까운 모습이기 때문에 조금 더 편안해져요. 그동안 ‘실장님’으로 불리면서 느꼈던 갑갑함을 조금이나마 벗어날 기회인 것 같기도 하고요.” 오래도록 갇혀 있던 틀 밖으로 살짝 빠져나와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는 그가, 머릿속에 콕 박혀있는 노래들을 추천해왔다. <hr/>
1. 허각의 <최고의 사랑 OST Part 5>“Mnet <슈퍼스타 K 2>에서 허각 씨가 ‘하늘을 달리다’를 부르는 걸 보고, 무조건 우승하게 될 거라고 확신했어요. 그냥, 다른 말이 필요 없어요. 굉장히 잘하더라고요. MBC <최고의 사랑 OST>에서 부른 ‘나를 잊지 말아요’도 그렇고, 허각 씨가 부르는 노래에는 감성이 살아있는 것 같아요. 여성 보컬 중에는 백지영 씨가 있다면, 남성 보컬 중에는 허각 씨가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그때 팬이 된 이후 시상식장에서 한번 만나서 인사하고, 요즘은 가끔 문자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어요.” 극 중 독고진(차승원)의 테마송으로 삽입되어 허각 특유의 애절한 보컬로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노래다.
2. 김연우의 ‘나와 같다면’이 수록된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 경연 3-2 네티즌 추천곡>“MBC <우리들의 일밤>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에서 김연우 씨가 부른 ‘나와 같다면’을 정말 좋아해요. 차 안에서 온종일 이 노래만 들은 적도 있을 정도예요. 개인적으로, 김연우 씨는 노래를 엄청나게 잘하는 가수라고 생각해요. 특히 시원하게 내지르는 고음에서 매력을 느껴요. 가사를 듣지 않고 음만 들어도 아주 좋은 노래죠.” ‘런닝맨’을 통해 지금까지 쌓아온 이미지를 단번에 깨버린 주상욱처럼, 김연우 역시 ‘나는 가수다’에서 파격적인 변신을 보여주었다. 그는 ‘나와 같다면’을 통해 그동안 고수해온 담담한 창법뿐 아니라 소위 ‘지르는’ 창법도 무리 없이 구사할 수 있는 가수임을 증명했다. 우리에겐 김장훈이 부른 버전으로 익숙한 곡이지만, 사실 원곡은 1995년 박상태가 부른 버전이다.
3. 아이유(IU)의 < Last Fantasy >“‘런닝맨’에 출연했을 때, ‘너랑 나’를 직접 들어보고 더 좋아하게 됐어요. 자다가 아침에 (김)성수 형이 깨워서 문밖으로 나왔는데, 아이유가 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요. 당연히 깜짝 놀랐죠. 목이 풀리지 않았을 것 같은 이른 시간인데도 굉장히 잘 부르더라고요.” ‘좋은 날’에 이어 ‘너랑 나’를 통해 아이유의 목소리가 실어 나르는 십 대 소녀의 감성은 마냥 풋풋하거나 귀엽지만은 않다. 오히려 쉽게 닿을 수 없는 걸 알기에 조금은 슬프고, 무거운 느낌이 든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보다는 ‘어른 아이’에 가까운 느낌. 그건 SBS <연애시대>나 알랭 드 보통의 소설을 좋아한다는 아이유가 그동안 키워온 감성과 연결된 것일 수도 있겠다.
4. 임재범의 < Desire To Fly >“임재범 씨가 부른 ‘비상’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예요. 노래방 18번이기도 하고요. 군대에서도 수백 번 들었죠.” 임재범의 두 번째 앨범 < Desire To Fly >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곡이라면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꼽을 수 있겠지만, 주상욱에게 특별한 노래는 ‘비상’이다. 지난해 3월 KBS <승승장구>에서 힘들 때마다 불렀던 노래로 소개한 바 있고, 일본 공식 팬클럽 창단식에서도 이 노래를 부르며 팬들과 첫인사를 나누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날고 싶어’ 등의 가사는 배우가 된 후에도 한동안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했지만 결국에는 당당히 이름을 알린 주상욱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기도 하다.
5. 부활의 <새벽>“이 노래 역시 군대의 추억 속에 있는 곡이예요. 사실 처음에는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들었어요. 이등병 때 고참 선배들이 ‘야 이등병 군바리, 너 이 노래 아냐? 요즘 밖에서 유행하는 노래야’ 하면서 들려주셨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그런데 음이 높아서 제가 직접 부르는 건 좀 어려워요. 하하. 듣는 것만 좋아하죠.” 주상욱이 마지막으로 추천한 곡은 부활의 ‘Never Ending Story’다. 부활 탈퇴 이후 약 10년 만에 돌아온 이승철이 불렀던 노래로, 당시 작곡에 몰두하느라 가족에겐 소홀했던 김태원 때문에 캐나다로 떠났던 그의 아내가 곡 발표 후 일주일 만에 돌아왔다는 이야기 또한 많이 알려져 있다. <hr/>
인터뷰 내내 자신만만한 톤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던 주상욱은 어느 순간, 무거워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깍두기>에서 처음 주연을 맡았었는데, 그때가 연기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어요. 감독님이 원하시는 대로, 혹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연기를 하고 싶은데 아무리 해도 안 되더라고요. 연기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겠죠. 그래서 항상 ‘나는 왜 안 될까?’ 하는 고민을 하느라 작품에 출연하는 6개월이 정말 지옥 같았어요. 제 자신이 너무나 싫고 한심스러웠던 거예요.” 어쩌면 배우라는 길을 포기해 버릴 수도 있었던 상황. 그러나 그 대신 주상욱은 쉬지 않고 작품에 매달리며 자신에 대한 확신을 키워왔다. 그 결과 이제는 “내가 표현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표현해도 된다”는 자신감을 갖췄고, 끊임없이 연기해야 하는 이유 또한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작품을 많이 하는 게 지금 제가 가진 것들을 끄집어내서 보여준다기보다, 나중에 더 많이 보여 드리기 위해 무언가를 쌓고 있는 거로 생각해요. 배우 주상욱이 소모되는 과정이 아니라.” 이토록 단단한 마음가짐이라니,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것은 앞으로 보여줄 모습들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황효진 기자 seventeen@10 아시아 사진. 채기원 ten@<ⓒ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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