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마리 휴지를 돌돌 풀어내듯이 너의 형은 네게서 집문서를 빌려갔다/형이 손을 씻으면 네 종잇장들은 하수관을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갈 것이다/만일 사과를 좋아했다면 너는 사과상자가 되었을 거라 했겠지/트렁크를 꽝, 소리 나게 닫으며 너의 형은 부르르 떤다/부동액을 한 모금 삼키고 비상표지판과 대걸레 사이에서 너는 논다(......)
권혁웅'트렁크처럼 너는 혼자였다'중에서■ 8행으로 된 이 시는, 섣불리 사연을 짐작할 수 없다. 툭 내뱉은 말들과 삼킨 말들이 뚝뚝 끊기며 이어지는 맥락 위에서 거칠게 뛰어다니고 있지만, 집문서를 빌려간 형과 교통사고를 흉내 내는 네 (구겨진) 얼굴 사이에 트렁크가 있다. 트렁크는 원래 골조를 철판으로 만든 여행용 가방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나 자동차의 짐싣는 뒤쪽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형이 문서를 넣어갔던 트렁크는 어떤 정치적인 자들이 돈을 담은 사과상자처럼 자동차 트렁크에 텅빈 채로 들어앉았다. 트렁크 속. 부동액과 비상표지판, 대걸레와 세사(細絲) 수건이 있는 곳. 허우대가 단단해 완전히 구겨질 수 없는 트렁크같은 고독감. 공지영의 산문집 '빗방울처럼 너는 혼자였다'는 권혁웅에 와서 이렇게 더욱 문명적인 키워드로 진화한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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