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詩] 고형렬 '청천의 都心 속 재규어' 중에서

한 마리 재규어가 걸어간다, 뒤돌아본다/시의 발성이 침묵으로 돌아서는 기척을 들었다/자신을 뒤따르는 영감이 있음을 아는 본능은/한번, 뒤돌아본다//(......)//문합 속의 날카로운 이빨도 홍점의 검은 무늬도/내부를 볼 수 없는 내장 속도 가을의 일색/회색의 변방, 십차선 끝 지하 서점 입구/재규어는 사라지고 없다■ 재규어(jaguar). 북미나 중앙아메리카에서 나무타기를 즐기는 맹수. 황갈색 털에 검은 얼룩 무늬를 지닌 날랜 그놈을, 대한민국 시인이 왜 읊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질문하면 촌사람 소리 듣기 딱 좋다. 개그맨 노홍철이 탄다는 그 차, 억(億) 소리 나는 수입차 재규어도 시(詩)가 된다. 원숭이나 나무늘보를 잡아먹으러 달려가는 그 포즈. 이 아름다운 체형의 자동차는 가을날 도심 한 복판 지하 서점 입구에 잠깐 머물러 있었으리라. 문합(吻合)은 다문 입술이고, 그 속에 이빨을 숨기고 있다는 뜻은, 돈의 맹수성(猛獸性)을 잠시 돋운다. 돌아보는 재규어의 시선은 리어미러. 어슬렁거림의 도상(途上)을 훔쳐보노라면 고향 아메리카의 권태까지도 수입해온 듯 하다. 하지만 자본은 맹수라는 점을 기억하라. 눈을 떼었다 다시 보니, 재규어는 거짓말같이 사라지고 없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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