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재벌(財閥).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 오너들을 일컬어 이렇게 부른다. 재벌이란 단어는 구조에서 알 수 있듯 '제 3자'가 바라보는 부정적 이미지를 담고 있다. '벌'이 담고 있는 의미는 문벌이나 가문, 즉 법률이 정해놓은 기준에 따르는 집단이 아니라 혈연이나 학연ㆍ지연 같은 사적 네트워크를 통해 형성된 세력을 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벌이란 곧 돈 많은 집안, 그들만의 이너서클을 그렇지 못한 사람이 바라보는 관점에서 붙인 용어인 셈이다.요즘 우리나라는 '재벌 만악' 주의에 빠진 듯하다. 재벌만 때려잡으면 이 땅에 지상낙원이 도래할 것처럼 얘기 하면서, 서민들의 분노를 재벌에게로 집중 시킨다. 재벌과 서민 이라는 이분법 논리로 진영을 갈라놓고 '자, 당신은 어느 편에 서겠느냐'라고 붇는다. 당연히 대부분의 대중들은 안티 재벌의 깃대 아래 모이게 돼 있다. 대중들은 복잡한 계층 간의 문제와 첩첩산중인 사회 구조를 뜯어보기보다 단순명료한 관계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막장 드라마' 에서 선악이 뚜렷한 대립관계를 세워 시청자들을 몰입시키는 것과 같은 이치다.재벌 개혁은 반드시 필요 하지만, 이런 단순명료한 선악구도는 타깃이 한군데 밖에 없다 보니 종종 엉뚱한 방향으로 포탄을 날리기도 한다. 재벌들의 빵집 소동이 대표적인 예다.'재벌가의 자식들이 빵집을 열어서 동네빵집을 다 죽인다' 라는 논리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의감에 불타는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수백조 재산을 가진 자들이 동네 골목 상권까지 위협한다니, 이것이야 말로 응징되야 할 사악한 탐욕의 표본이다.여론에 질타를 맞은 삼성, 롯데, 현대차 등 재벌가의 자제들은 빵집 사업을 속속 철수 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여기서 간단한 테스트를 한번 해보자. 지금부터 각자 머릿속에 '빵집'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가 무엇일까? 이 질문을 받고 삼성의 '아티제', 현대차의 '오젠', 롯데의 '포숑' 같은 대체 어디 있는지 조차 찾기 힘든 빵집을 떠올린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자사 백화점 매장, 계열사 사옥, 계열 호텔 등 몇 군데 밖에 매장이 없다는 이 재벌가 빵집들이 사라지면 우리 동네 시장 한 귀퉁이에 있는 'ㅇㅇㅇ 빵집' 같은 가게들은 진짜로 봄날을 맞이하게 될까?재벌 때려잡기 식 논리가 책임을 엉뚱한 곳에 뒤집어씌우며 대중들을 호도 하는 동안 동네빵집들을 고사 시키는 진짜 주인공(?)들은 지금도 가맹점을 늘려 막대한 로열티를 챙기고 있다. 이거 저거 띄고 나면 남는 것도 없다지만 동네 빵집들은 어쩔 수 없이 진짜 주인공들의 대 제국에 투항할 수밖에 없다.재벌은 개혁하고, 그들의 굳건한 제국에 대한 감시와 검증은 한순간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정의에 용사와 악당이라는 단순화된 대립구도에 매몰돼 '타도 재벌'만 외치는 동안 서민들을 옥죄는 진짜 문제꺼리들은 그림자에 묻혀 잊혀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이초희 기자 cho77lov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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