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詩]벤 존슨 '실리아에게' 중에서

내게 잔을 들어주오 당신의 눈으로만, /그러면 내 눈으로 잔을 들겠소; /아니면 키스를 술잔에만 남겨주오. /그러면 나는 술을 찾지 않으리. /영혼에서 생겨나는 갈증은 /성스런 술을 필요로 하오: /주피터의 신주를 마실 수 있다 해도 /당신의 것과 바꾸지 않겠소. 얼마전 장미다발을 당신에게 보냈소. /당신을 귀하게 여겨 보냈다기 보다는 /거기선 꽃이 시들 수 않을 거라는 /희망을 가졌소. /그런데 당신은 장미 향기를 맡아 보고서 /내게로 돌려 보냈소; /그후 정말 꽃은 자라나고 향이 피어났소. /장미향이 아닌 당신의 향기가. ■세익스피어 시대의 시인이자 극작가였던 벤 존슨(Ben Jonson 1572-1637)의 이 시는 나를 매료시켰다. 실리아(Celia)와 나 사이에는 테이블이 놓여있고 그 위에 술잔이 놓여있다. 존슨은 말한다. “당신이여. 날 위하여 눈으로만 잔을 들어주오. 그러면 나도 눈으로 잔을 들겠소.” 눈으로 잔을 드는 건 눈 앞의 술잔이 아니라 마음에 떠올린 잔이다. 그것에 살짝 갖다대는 나의 술잔 또한 마음에 떠올린 잔이다. 마음의 잔과 마음의 잔이 부딪쳐 쟁그렁 소리를 낸다. 술잔은 다만 마음을 맞대기 위한 외물일 뿐이며, 서로 닿았다 떨어지는 마음의 촉감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전율을 부른다. 존슨은 아들이 죽었을 때 무척 천진하고 가슴을 베는 시를 남겼다. 그는 말한다. “아이야. 너를 세상으로 7년 동안 빌렸다가 이제 돌려주는구나. 사람들이 부러워해야 할 것을 왜 슬퍼하지? 그는 괴로운 세상일과 육체의 번민들과 나이드는 일을 겪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말한다. “누가 묻거든 말해주렴. 여기 벤 존슨의 가장 좋은 시 한편이 잠들어 있노라고. 다시는 다른 사랑을 쏟을 수 없을 지 모른다고.”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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