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킹스컵을 하고 있어?” 태국에서 열리는 킹스컵은 말레이시아가 주최하는 메르데카배 대회와 함께 스포츠 올드 팬들에게 무척이나 익숙한 국제 축구대회다. 1970년은 한국 축구에 경사스러운 해다. 그해 8월 메르데카배 대회와 11월 킹스컵 그리고 12월 방콕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모두 정상에 등극했다. 메르데카배 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단이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하는 사진은 신세대 팬들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는 한국 축구 수준이 딱 그 정도였다. 올드 팬들이 갑작스레 킹스컵을 떠올린 건 2012 런던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하고 있는 23세 이하 대표팀이 전력을 점검하기 위해 이 대회에 출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23세 이하 대표팀은 내년 1월 5일 파주 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 모여 6일부터 오키나와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11일 킹스컵이 열리는 태국으로 간다. 이어 15일 태국과 첫 경기를 시작으로 덴마크(18일), 노르웨이(21일)와 경기를 치른다. 2월 5일 열릴 사우디아라비아와 2012년 런던 올림픽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A조 4차전 원정 경기에 대비한 전지훈련을 겸한 실전 테스트다. 예전에는 우승을 목표로 국가 대표팀이 출전하는 대회였지만 이제는 23세 이하 대표팀의 실전 감각 유지를 위한 대회가 됐다. 그때는 국가 대표팀과 23세 이하 대표팀의 구분이 없었다. 당시 국가 대표팀은 비용 문제 때문에 요즘처럼 유럽 등지로 나가 전력을 다지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외국 유명 클럽 초청 경기를 자주 가졌다. 외국 유명 축구 클럽의 방한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외국 함대 승무원이 국내 여러 항구에 머무는 사이 친선경기를 벌인 게 그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이스라엘의 하포엘 텔 아비브가 1957년 9월 한국을 찾으면서 외국 유명 클럽의 방한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요즘은 유럽축구연맹(UEFA)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그 무렵 이스라엘은 아시아의 축구 강호였다. 1956년 제1회 아시안컵 서부 지역 예선에서 버마(미얀마), 이란, 태국 등을 제치고 본선에 올라 한국, 월남(남베트남), 홍콩 등과 겨뤄 한국에 이어 준우승했다. 하포엘 텔 아비브의 명성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2001-02시즌 UEFA컵 준준결승에서 AC 밀란에 종합 스코어 1-2(홈 1-0, 원정 0-2)로 져 탈락했지만 8강에 오르기까지 2라운드부터 첼시 FC, 로코모티브 모스크바, 파르마 FC를 차례로 꺾는 등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다. 1926년 창단한 구단은 2011-12시즌에서도 17일까지 이스라엘 리그 2위를 달리고 있다.한국과 이스라엘의 축구 인연은 1970년대까지 이어지는데 한국에 몇 차례 방문해 차범근과 비교되며 올드 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모데차이 슈피글러는 프랑스 리그 파리 생제르맹 FC에서 뛴 그 무렵 아시아 최고 수준의 선수였다. 외국 클럽의 방한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경기가 있다. 1961년 4월 브라질 클럽으로는 한국을 처음 찾은 마두레이라다. 당시 도쿄에서 일본 대표팀을 3-0으로 이긴 마두레이라는 한 수 위의 기량을 보이며 국가 대표팀을 각각 4-2와 2-0으로 꺾었다.
군터 네처 [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올드 팬들이 잊지 못할 경기는 하나 더 있다. 1969년 6월 막 야간 조명 시설을 갖춘 서울운동장에서 벌어진 서독 분데스리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 국가대표 2진의 대결이다. 당시 보루시아의 군터 네처는 코너킥을 그대로 골로 연결하는 묘기로 국내 팬들을 놀라게 했다. 네처가 감아 찬 공은 골키퍼의 뒤로 돌아 반대편 포스트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때 나온 말이 ‘바나나킥’이었다. 더욱 놀라운 ‘바나나킥’이 1년여 뒤에 나왔다. 포르투갈 리그 벤피카 FC의 에우제비오는 1970년 9월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국가 대표 2진 백호와 경기에서 30m가 넘는 장거리 프리킥을 성공했다. 에우제비오가 오른발 안쪽으로 감아 찬 공은 강한 회전이 걸리며 큰 곡선을 그렸고 그대로 골대 왼쪽 위에 꽂혔다. 이 무렵 브라질 리그의 플라멩고, 스코틀랜드 리그의 던디 유나이티드, 잉글랜드 리그의 코벤트리 시티 등이 방한 경기를 가졌다. 1972년 6월 펠레가 이끄는 브라질 리그의 산토스 FC는 서울운동장에서 이회택과 차범근이 한 골씩 넣은 국가 대표팀을 3-2로 물리쳤다. 산토스는 한국에 오기 전 일본을 3-0, 홍콩을 4-0으로 완파했다. 1976년 5월에는 잉글랜드 리그의 맨체스터 시티가 방한해 국가 대표 1진인 화랑을 3-0으로 두 번 이겼고 국가 대표 2진인 충무에 2-4로 졌다. 1971년 창설된 박대통령배쟁탈축구대회는 1976년 제6회 대회부터 초청국을 아시아에서 유럽, 남미 등으로 넓히면서 외국 클럽과 국가 대표팀이 경기를 갖는 무대로 바뀌었다. PSV 에인트호벤(네덜린드), 제노아(이탈리아), 바이에르 레버쿠젠(서독), 브뢴드비(덴마크), 리에르세(벨기에) 등 세계 각국의 클럽이 이 대회에 출전했다. 1979년 9월에는 프란츠 베켄바워와 요한 네스켄스가 이끄는 미국 프로축구 NASL(North American Soccer League, Major League Soccer의 전신)의 뉴욕 코스모스가 한국을 찾았는데 화랑에 각각 0-1과 1-3으로 졌다. 이제는 외국 클럽이 국가 대표팀과 싸울 일이 없지만 한국 축구가 발전하는 데 외국 클럽이 미친 영향은 결코 적지 않았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아시아경제 & 재밌는 뉴스, 즐거운 하루 "스포츠투데이(stoo.com)">
대중문화부 이종길 기자 leemean@ⓒ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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