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채정선 기자]
지난 주, 논현동 쿤스트할레에서 레코드페어가 있었습니다. 토요일 하루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의 축제였지요. 이런 생각 해 본 적 없나요. “대체 음반을 사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김영혁 소니뮤직 뉴비즈니스팀 본부장의 이야기입니다. “누군가 거리에서 전화 통화를 하는 데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온라인이 아닌데서 어디서 음반을 살 수 있냐고. 수천 개에 달했던 전국의 음반점들은 이제 200곳이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대부분의 매장들이 이어폰이나 헤드폰, 혹은 그외 다른 품목으로 버티고 있지요. 이건 음반을 들여다보면서 음반가게 주인의 추천을 받는 식의 커뮤니케이션이 사라졌다는 얘기입니다. 어쩌면 대형 서점 아닌, 동네 음반가게 매장에서의 이러한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도 많겠지요. 무엇보다 LP라는 매체가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LP를 구경조차 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지요. 이러한 상황에서라면 사석에서 레코드페어를 한 번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얘기가 종종 나오기 마련이지요. 마침 뜻이 맞는 라운드 앤 라운드를 만났고 행사를 구체적으로 준비하게 되었습니다."이렇게 레코드페어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당일, 쿤스트할레로 향했습니다. 들어서자마자 생각한 것. 쿤스트할레가 이렇게까지 좁게 느껴진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 행사는 국내 최초로 열리는 '본격 음반(CD+LP) 축제'입니다. 주최측은 ‘보고, 만지고, 느끼고, 나누는 음악 축제!’라고 했지요.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개인 참여자는 물론, 음반 관계자, 평론가, 음악인들이 함께 하는 자리였습니다. 누구나 판매에 참여하거나 홍보에 도움을 주거나, 공연에 협조하는 식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이런 자리라면 애호가들이 찾아들기 마련이지요. 주최측은 일찌감치 온라인을 통해 티켓을 판매했습니다. 연령대는 20~30대 구매 비율이 대단히 높았다고 하네요. 인기 밴드, 막 데뷔한 밴드들이 공연을 해서일까요. 흔히 레코드라고 하면 추억의 산물이라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판매에 참여하는 레이블의 면면을 봐도 그렇고. 단박에 수긍하고 넘어가기엔 재미있는 집계입니다. 참고로 김영혁 본부장은 행사 전, 현장에 1500~2000명 정도가 레코드페어를 방문할 것으로 예상했었습니다.
오늘날 음악 시장은 음원이 대다수일 것 같지요. 그러나 레코드(CD, LP)는 여전히 음악의 중심에 있습니다. 잠시 LP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1931년부터 RCA(현재 소니뮤직 산하의 레이블)에서 최초 생산이 된 것으로 컬럼비아(현재 소니뮤직 산하의 레이블)를 통해 대중화되었습니다. 그리고 1948년, RCA에서 7인치(우리가 말하는 LP는 12인치 레코드), ‘도너츠판’이라 부르는 싱글 레코드를 내놓지요. 그런데 7인치 레코드에는 5분 정도의 곡밖에 담을 수 없었으므로 12인치가 주류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향후 CD가 대중화 되면서 LP는 사라지는 듯 했지요. 그러나 LP는 사라지지 않고 도리어 부흥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적 음반 가운데 매년 유일하게 성장하고 있는 포맷이기도 합니다. 레코드페어측이 제공한 자료에 의하면, ‘1991년 사운드스캔이 미국의 음반 판매량을 집계한 이래, LP는 2009년 최다 판매 기록을 경신했다. LP가 제법 많이 생산되던 1991년보다 2009년에 더 많은 LP가 판매된 셈이다. 2009년 미국 내 LP 총 판매량은 250만장. 2010년에는 280만장까지 성장했고, 2011년에도 4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현재 서구의 인디 레이블들을 포함해 메이저 레코드사에서도 새 앨범이나 재발매작을 LP로 신규 제작하고, LP 안에 음원을 다운로드 할 수 있는 쿠폰을 넣어주고 있습니다. 또한 턴테이블 회사들이 USB를 통해 LP의 사운드를 휴대기기에 담을 수 있게 한 것도 최근 레코드의 성장을 뒷받침해주고 있지요. 하나의 사례, 전 세계 특급 뮤지션들이 지지 의사를 밝히고, 수백 개의 한정판 레코드를 발매하는 전 세계 레코드 축제인 ‘레코드 스토어 데이 Record Store Day’가 있습니다. 매년 4월 셋째 주 토요일에 개최되는 행사지요. 이 스토어데이는 2008년부터 호황 중입니다. 미국에 위치한 700여개의 독립 레코드점에서부터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호주, 캐나다 등 세계적으로 큰 음반 시장인 20여개 국가의 수많은 독립 레코드 가게로 확대되어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김영혁 본부장은 국내 레코드 시장도 2012년을 기점으로 급성장하지 않을까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레코드페어가 기폭제가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CD는 대부분 1만원, 1990년대 국내 가요 LP는 5천원, 비틀즈 박스는 10만 원가량 인하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일찌감치 레코드페어 사진으로 시끌벅적하던 트위터와 페이스북이야 말할 것 없었는데, 오후가 되자 하나둘 절판 소식이 보고되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즐거웠던 이정선과 로다운30의 공연입니다. ‘건널 수 없는 강’ ‘산 위에 올라’ ‘섬소년’등의 곡을 들을 수 있는 귀한 자리였으니까요. 수작업 LP 미니어처를 제작해 온 키오브의 오리지널 LP와 LP 미니어처 비교 전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3층 전시장에서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갖고 구입해 가는지 지켜보고 있던 서보익 키오브 대표를 만났습니다. 그는 “실질적이라 할 수 있는 음반 관계 마켓은 처음인 것 같다. 관계자나 콜렉터나 정보교류에 폐쇄적이고 수동적인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다. 중반에 접어드는 시각인데 1회 치고 성공적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이번 행사장에서 키오브는 밥 딜런,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플릿우드맥 등 거장들의 오리지널 LP, 뮤제오 로젠바흐(Museo Rosenbach), 방코(Banco) 등 고가에 거래되는 이태리 록의 오리지널 LP 등을 전시했습니다. 이정선 & 로다운 30 특별 공연에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와 360 Sounds, 마이티 코알라, 제니퍼 웨이셔, 에센스의 특별 쇼케이스까지 공연은 6회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한쪽에서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쿤스트할레 3개 층은 내내 북적였습니다. 한쪽에선 1/10 가격에 레코드를 구입했다거나 귀한 앨범을 만났다는 환호가 이어졌고요. 젠하이저 헤드폰을 반 가격에 구입하는 것도 이날이 아니면 쉽게 만나기 힘든 일이겠지요.
▲ 이정선(1974), '섬소년_오직 사랑뿐'
▲ 이정선(1981), 6.5집 '그대 마음은_답답한 날에는 여행을'
마감 시간이 다가오면서 할인 폭을 재조정하는 곳도 생겨났습니다. 그즈음, 제 손에는 레코드 두 장이 들려 있었고요. 그리고 슬슬 2회를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두 번째 레코드페어에 관해서라면 희망하는 바는 있되, 결정된 것이 없는 상태였으니까요. 확인해보니 행사 후 레코드페어측이 공지한 글에서도 내년 이맘때를 약속하고 있었습니다. 즐거운 토요일,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한 셈입니다. 올해는 탐나는 LP들을 점지해두기만 했는데, 다행히도 '내년이 있으니까 괜찮아'가 되었네요. 더 넓은 장소에서 더 많은 이들과 컨텐츠가 함께하는 즐거운 기약을 해봅니다. 무엇보다 올해 레코드페어의 분위기를 느껴본 바, 내년에는 더 많은 분들이 즐거운 자리에 함께하길 기대해봅니다.
▲ Bob Dylan, 'The Freewheelin'
▲ Fleetwood Mac, 'English Rose'
채정선 기자 est@<ⓒ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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