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여자애들 인생 당신이 책임질 거요?'

은행! 우리 애들 뽑지마오

[아시아경제 박현준 기자, 박은희 기자] #A시중은행의 인사담당 김모 과장은 최근 격앙된 목소리의 전화 한통을 받았다. 여자 상업고교의 취업담당 교사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 이는 "은행들이 여상출신을 행원으로 채용한다고 하는 데 실제로는 비정규직으로만 뽑고있다. 고용보장이 안 돼 몇 년 있다가 잘릴 운명인데 세상물정 모르는 학생들은 은행이면 무조건 좋다고 한다."고 항의했다. 이 교사는 이어 "일반 기업에 들어가면 '공순이' 소리는 들을지 몰라도 안정적인 정규직"이라면서 "은행 당신들이 학생들 인생을 책임질 수 있냐?"고 따졌다. 김 과장은 "그 교사의 말이 전부 맞는 말이라서 뭐라고 대꾸할 수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정부가 독려하고 있는 은행권의 고졸 채용 정책이 겉돌고 있다. 은행은 고졸 채용을 늘리고 있고, 학생들도 은행원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은행, 학교, 학생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은행권이 올해부터 2013년까지 3년간 뽑겠다고 밝힌 고졸출신 행원은 모두 2986명. 올해만 해도 지난해의 두배가 넘는 1051명이 은행권에 입사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정규직은 불과 70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비정규직이다. 채용되는 고졸 은행원 가운데 정규직 비율은 6.6%인 셈이다. 일부 은행에선 채용 과정에서 "특정 과정을 거치면 정규직으로 채용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정규직으로 전환 가능한 경우에도 각종 업무평가나 '정규직 전환시험'를 치러야 한다. 일례로, B은행은 비정규직 직원들의 경우 2년 후 무기 계약직으로 고용조건을 전환한 후 1년에 1~2번 있는 내부시험을 거쳐야 정규직으로 채용된다. 이 과정에서 전체 비정규직 입사자 가운데 10명 가운데 3명꼴로만 정규직이 될 수 있다. 그나마 B은행은 조건이 좋은 편이다. 대부분의 은행에선 10명 가운데 1명 꼴로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게다가 상당수 은행은 정규직에 비해 비정규직에 대한 교육 투자가 상대적으로 적다. 따라서 고졸 행원들 가운데 실제로 얼마나 숙련 근로자가 될 지도 미지수다. C은행 관계자는 "비정규직 고졸들의 업무능력과 조직적응력에 의심이 든다"면서 "비정규직은 업무교육을 정규직과 따로 분리해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여자상업고교 학생들 사이에서도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삼성 등 대기업과 비교해 '인기도'가 상당히 떨어지고 있다. 3학년 졸업예정 학생이 160여명인 서울 강동구 S여상의 경우, 대기업에 입사하려면 전교성적이 한 자릿수에 들어야 한다. 반면, 은행권은 전교 20위권 내외라면 지원할 수 있다. 이 학교의 취업담당 교사는 "은행권에 대한 학생들의 선호도가 처음보다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며 "취업지도를 할 때도 몇 년후에 신분이 불안해질 것을 감안해 학생들에게 일반기업 정규직에 가라고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 S여상의 취업담당 교사 역시 "계약직인지 비정규직인지를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있지만 학생들이 그래도 취업을 원하면 지원서를 써 줄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며 "학생들은 열심히 일하면 1~2년 안에 정규직으로 전환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지원한다"고 밝혔다.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은행연합회와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정규직 전환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답을 얻었지만, 은행들의 인사정책과 관련된 일이라서 정부가 직접 나서기는 어렵다"고 말했다.박현준 기자 hjunpark@박은희 기자 lomoreal@<ⓒ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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