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법은 '한국은행의 정책결정기구로서 7인으로 구성된 금융통화위원회를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 금통위는 대한민국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명실상부한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것이다. 그런데 정부와 한국은행은 법 규정을 무시하고 금융통화위원 한 자리를 비워둔 채 장기간 내버려 두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한가운데에서 그랬다. 금통위의 기능과 권위를 우습게 여기는 태도이자 국민경제에 대한 공적 책임감이 결여된 자세가 아닐 수 없다. 금통위원 한 자리를 채우는 데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모든 사람이 의아해 했던 그 이유가 그제 열린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밝혀졌다. 공석 중인 금통위원에 대한 추천권을 가지고 있는 대한상공회의소 손경식 회장은 "아무나 추천했다가 (청와대가) 안 된다고 하면 추천받은 사람도 곤란하다"면서 "청와대에 문의했더니 아직 결정된 게 없어 기다리라고 했다"고 말했다. 금통위원 장기 공석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금통위원 추천권이란 제도가 얼마나 유명무실한지를 드러낸 어이없는 발언이다.지난해 4월24일 대한상의 추천이었던 박봉흠 금통위원이 퇴임한 후 17개월이 지났지만 후임 인선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이런저런 추측이 난무했다. 당사자인 대한상의는 마땅한 인물이 없다고 말해왔고, 청와대는 후보자를 물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공을 떠넘겼다. 그런 터에 나온 손 회장의 발언은 양측이 함께 국민을 속여 왔다는 진실의 고백인 셈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은과 금통위는 금리인상의 적기를 놓쳐 물가압력을 가중시켰다는 등 비판의 소리를 들었다. 1명이 공석인 상태에서 이뤄진 금통위의 결정에 대한 유효성 논란도 빚어졌다. 기획재정부 장관과 금융위원회 위원장, 한은 총재 추천 인사 등 가뜩이나 금통위원의 구성이 정부 쪽으로 치우쳐 있는 터에 하나뿐인 경제계 추천 몫은 비어 있으니 실물경제계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됐을 리 없다. 금통위원은 기준금리 결정 등 막강한 권한에 4년 임기가 보장돼 있고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보다 1억원 이상 많은 연봉을 받는다. 그런 대단한 금통위원 자리가 비어 있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법이 정한 추천권도 유명무실하다면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 아니면 전원 청와대 임명으로 바꾸는 편이 떳떳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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