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 반년‥후쿠시마현은 지금
[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 지난 3월, 대지진과 쓰나미가 일본 동북지방을 강타한 지 6개월이 지났다. 도쿄전력의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에서 방사능이 누출된 사고 이후 후쿠시마현 일대에는 1945년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때보다 더 광대한 ‘방사능 위험지대(Radioactive Zone)’이 형성됐다. 원전으로부터 반경 20km 지역에 출입금지 조치가 내려졌고, 수려한 경관을 찾아온 외지인들로 붐비던 이 지역은 인적을 찾을 수 없는 황량한 땅으로 변했다.후쿠시마현 소마(相馬)군 이타테(飯館) 마을에서 농장을 운영하던 80세의 하라다 다카코 노인은 일본 정부의 대피령이 떨어진 4월 가족과 함께 북부 다테(伊達) 시로 피난했다. 남겨두고 간 차를 가져오기 위해 이달 9일 다시 찾아온 집에는 텅 빈 외양간만 남아 있었다. 100마리가 넘게 키우던 소들은 현청의 지시로 모두 살처분됐다. 하라다 노인의 집터에서는 시간당 3마이크로시버트의 방사선량이 검출되고 있다. 연간으로 따지면 26밀리시버트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가 규정한 성인기준 연간 피폭허용치 1밀리시버트의 26배다.40년 동안 소를 키워 자녀들을 뒷바라지한 하라다 노인은 “늙은이들은 다시 마을로 돌아오고 싶어 하지만 젊은이들이나 애들을 키워야 하는 사람들은 방사능 걱정에 돌아올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다시 소를 키우고 싶지만 뭐라도 팔 수나 있겠느냐”고 노인은 하소연했다. 블룸버그통신은 26일 원전 사고 6개월이 지난 후쿠시마현 현지 상황을 전했다. 2011년 3월 일어난 대지진 사태로 2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거나 실종됐다. 경제적 피해는 17조엔에 이르러 20년간의 불황을 겪은 일본 경제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웠다.누구보다도 고통스러운 것은 현지 주민들이다. 정부의 소개령으로 총 16만명이 이주했다. 이들은 최소 20년, 혹은 그 이상 고향으로 되돌아 올 수 없게 됐다. 지역 경제도 무너졌다. 산행을 나서거나 해변가를 거닐던 관광객들도 모두 자취를 감췄고 연간 32억달러 규모의 후쿠시마현 농업은 완전히 황폐화됐다. 이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에서 방사성물질이 검출되면서 다른 지역 소비자들의 불신도 깊어졌다. 올해 51세인 오쓰카 마사키 씨는 파이프용접공으로 일하다 원전 사태로 집을 떠난 뒤 후쿠시마시 아즈마의 임시수용시설에서 6개월째 머무르고 있다. 그는 “원전에서 딱 4km 떨어진 곳에 집이 있다”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은 버린 지 오래”라고 말했다.안전한 지역으로 이주한 주민들 역시 고충을 겪고 있다. 아벨 곤살레스 ICRP 부위원장은 원전사태 발생 6개월을 맞아 후쿠시마시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지역 주민들에 대한 ‘낙인효과’가 앞으로 가장 큰 문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타 지역으로 이주한 아이들이 이같은 일을 겪었다. 산케이신문은 4월 인근 지바현으로 이주한 후쿠시마현 아이들이 급우들로부터 “방사능을 묻히고 다닌다”면서 집단 따돌림을 당한 사례를 보도했다. 교도통신도 니가타현에서 11살짜리 어린이가 집단따돌림과 괴롭힘에 시달리다 입원했다고 전했다. 일본 문부과학성의 방사선량 조사자료에 따르면 노심 용융(멜트다운)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5~10km 너비의 고농도 방사성물질 검출지대가 형성되어 반경 30km 지역까지 뻗어 있다. 현재 일본 정부는 원전으로부터 반경 20km 이내 지역을 통제 지역으로, 반경 20~30km 지역은 ‘비상대피준비지역’으로 지정한 상태이며 비상대피준비지역은 이달 30일부터 공식 해제된다.후쿠시마현 북동부의 미나미소마(南相馬)시는 남쪽 지역 3분의1이 원전으로부터 반경 20km 거리에 들어가는 출입경계지역이고 나머지 3분의 1은 30km 거리 이내에 들어 있다. 쓰나미 피해에 이어 원전 사태 여파의 직격탄까지 맞은 것이다. 미나미소마시에서는 해마다 ‘소마노마오이(相馬野馬追)’ 축제가 열린다. 1000년 이상 이어져 온 일본의 중요무형민속문화재로 동북부지방의 6대 축제이지만 올해 7월 방문자 수는 3만7000명에 머물렀다. 약 20만명이 찾아온 지난해의 5분의1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미나미소마시 관광교류과의 사가시타 다쿠야 씨는 “방사능 불안으로 방문객이 크게 줄어든 데다 쓰나미로 말이 100마리 이상 떠내려가고 각종 소품도 너무 많이 유실돼 축제 규모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해외 전문가들은 일본의 원전사태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1986년 원전사고가 발생했던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인근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이 살 수 없는 상태다. 체르노빌에서 방사능의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체류 중인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의 티모시 무소 생물학교수는 “간단한 해결책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후쿠시마현 주민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얼마나 위험을 균형적으로 수용하느냐의 문제”라면서 “체르노빌 사고의 전례로 볼 때 후쿠시마현의 현재 방사선량 수준에 노출되는 주민들의 경우 그 영향은 어떻게든 후대에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나타냈다.김영식 기자 grad@<ⓒ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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