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4 예측불허 용인술(하)그가 불쑥 던지는 한마디에 담긴 인사스타일1. "떠난 사람도 내 식구"-故 鄭 명예회장 가신 등 현대차 옛 사람들 복권2. "수고했어"-사직서 쓰란 의미가 많지만 더 일하라는 숨은 뜻도3. "그 사람 지금 뭐하나"-직접 내보낸 인사도 직접 근황 챙기며 다시 발탁4. "꾸짖어서 섭섭했어"- 호통 친 임원에겐 직접 두들겨주며 따뜻한 격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오른쪽)이 지난 4월 14일 현대하이스코 당진 2냉연공장 건설 현장을 방문해 사위이자 올해 회사 단독 대표이사가 된 신성재 사장(왼쪽)으로부터 현황을 설명받고 있다.
[아시아경제 MK리더십 특별 취재팀] 김원갑 현대하이스코 부회장은 지난해 말 상근고문으로 물러났다가 4개월여 만에 부회장에 복귀했다.김 부회장은 사직서를 두 번 쓰고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으로부터 두 번 모두 중용 받은 특이한 이력을 갖게 됐다. 현대그룹 종합기획실 출신인 김 부회장은 소위 말하는 정 회장의 '가신그룹'이 아니었다. 계열 분리 직후 현대차로 이동해 재경사업부 전무로 재직했던 그는, 2001년 7월 종합기획실 출신이었던 이계안 현대차 사장이 자리에서 물러나자 함께 사직서를 제출했다. 정 회장을 따르는 인사들과 마찰을 빚지 않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정 회장에 의해 사표는 반려됐고, 그는 기아중공업(현 현대위아)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평소 그를 살펴왔던 정 회장이 더 일해보라고 배려한 것이다.1년도 안돼 현대하이스코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2003년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고, 이듬해 INI스틸(현 현대제철)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한보철강 인수전에 뛰어들어 성공한 뒤 계약서에 직접 사인했다.2005년에는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또 다시 승진했는데, 같은 날 정 회장의 사위인 신성재 부사장도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1998년부터 현대하이스코에 재직한 신 사장은 김 부회장 아래에서 냉연수출팀장, 수출담당 이사, 관리본부 부본부장(전무), 영업본부장 겸 기획담당 부사장을 거쳐 사장 자리에 올랐다. 이후 6년간 현대하이스코는 두 사람의 대표이사 체제를 유지했고, 김 부회장이 가르친 신 사장은 단독 대표이사에 올랐다.◆"수고했어"= 오너 회장이 스킨십 경영을 강조할 때 늘 하는 이벤트가 젊은 직원들과 만나는 것이다. 산에 오르고, 국토대장정을 할 때, 오너 회장이 함께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늘 봐왔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다르다. 지난 10년간 정 회장은 신입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한 특강에만 가끔 모습을 보일 뿐 별도로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다.정 회장을 만나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정 회장은 아침 6시 30분 무렵 양재동 사옥 집무실로 출근해 하루 종일 일만 하고, 외부 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다. 칠순이 넘었지만 여전히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달변하고도 거리가 먼 성격 탓으로 보인다. 큰 형을 먼저 떠나보낸 뒤 장자 역할을 맡은 그는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아버지에 그늘에서 지내야했고, 치고 올라오기 위해 빈틈만 엿보는 동생들의 견제를 받아야 했다. 힘들고 거친 일생의 연속이라 사석에서 소주 한잔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지인도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포커 페이스인 정 회장이 어쩌다 어색하게 미소를 지을 때면 모든 취재 카메라가 주목할 정도다. 독불장군이라는 별칭이 나온 배경이다.여기에 현대차그룹 출범 초기부터 시작된 깜짝 인사는 정 회장을 인정 없는 오너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지난 2001년 그룹 인사를 통해 새로 임원에 오른 수는 47명인데 이중 2004년 말까지 회사에 다닌 사람은 25명에 불과했다. 퇴직자 22명의 평균 임기는 겨우 1.5년이었다. 2002년 선임된 31명의 임원 가운데에서도 3년 만에 40%인 13명이 옷을 벗었다. 13명 퇴직자 평균 임기는 1.31년이었다. 당시 현대차의 임원은 '임시직원'의 준말이라고 까지했다.퇴직한 임원의 대부분은 기존 현대차 출신들이었다. 정주영 명예회장, '포니 정'이라 불리던 정세영 전 현대차 명예회장, 심지어 동생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라인이라 불리는 인사들이 줄줄이 회사를 떠났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정 회장이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됐던 현대정공과 현대자동차써비스 출신들로 채워졌다. 신라시대 골품제도를 빗대 '현대정공과 현대자동차써비스 출신은 성골, 현대차 출신은 진골, 기아차 출신은 6두품'이라며 자조섞인 푸념이 흘러나오기도 했다.식사를 하거나 회의를 하던 도중 갑자기 특정 임원에게 던지는 정 회장의 "수고했어" 한 마디는 사직서를 쓰라는 의미라고 한다. 오랜 기간 함께 일해 왔지만 간단한 말 한 마디로 관계를 정리하는 정 회장의 모습에 비정함이 느껴진다고까지 말한다.◆"그 사람 지금 뭐하나?"= 하지만 정 회장은 매정한 CEO가 아니라고 한다. "수고했어"의 뒤에는 '그만 나가달라'는 뜻 뿐만 아니라 '더 일하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지난 2001년 3월 21일 정 명예회장 타계 이후에도 현대건설 계동 사옥 15층에 상징적으로 운영해 오던 명예회장 비서실이 타계 100일 탈상에 맞춰 해산했다. 이 때 정 회장은 비서실에 근무하던 직원 3명을 현대차에 입사시켰다. 아버지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 준 직원들에게 감사하다며 본인들의 희망에 따라 해외지사로 가서 근무토록 배려했다.누구라도 조직을 맡으면 자신의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변화를 일으키게 마련이다. 초창기 정 회장의 잦은 인사는 자신의 현대차그룹을 정착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조직이 어느 정도 안정화 되자 그는 옛 사람들을 차례로 다시 불러들였다.정세영 전 명예회장 시절 현대차 사장을 역임했던 박병재씨(현 영창악기 대표이사 회장ㆍ현대산업개발 상근고문)는 1998년말 현대차 부회장을 맡으며 최고 경영진에 합류한 뒤 99년에는 기아차 부회장도 겸임했다. 아버지 시절 현대차 인사들도 복권시켰다.2002년 INI스틸 사장을 그만 둔 윤주익 사장은 2년 후에 엠코 부회장으로 불러들였으며, 윤국진 전 기아차 사장도 역시 2년 후에 복귀시켰다. 김용문 전 다이모스 부회장도 정 회장의 부름으로 컴백한 케이스다. 김 부회장은 1998년 현대우주항공 사장직에서 물러난 뒤 무려 10여년간 현대차그룹과 인연을 끊었다가 2008년 현대차 기획조정실장 부회장으로 발탁됐으며, 이후 계열사인 다이모스 부회장으로 이동했다.발탁과 더불어 중용은 정 회장이 중시 여기는 인사 정책이다. 정 회장은 내보낸 인사들의 근황을 늘 살피곤 한다는데, 측근들에게 "OOO는 지금 뭐하나?"라고 물어볼 때는 곧 다시 불러들이겠다는 뜻이라고 보면 된다고 한다.◆"거짓은 죄악"= 정 회장의 깜짝 인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초창기와 달리 최근에는 의미가 달라졌다고 한다.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한, 직원들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기 위한 방안의 일환이라는 것이다.무분별해 보이지만 정 회장의 인사에는 원칙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거짓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사업과 관련한 여러 가지 질문을 할 때 해당 임원이 즉답을 내지 못한다면, 정 회장은 그가 머릿속으로 어떻게든 잘 보이기 위해 미사여구를 꾸미려 한다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한다. 수 만명의 직원들을 책임져야 하는 1인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사항이 최측근들이 올리는 거짓 보고다. 측근의 사탕발림식 처사는 1인자로 하여금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유도해 잘못된 자세를 취하게되고, 이런게 하나하나씩 쌓이면 결국 회사는 망하게 된다. 철저한 원칙론자인 정 회장은 그래서 잘했건 못했건 솔직한 답변을 원한다고 한다. 만약 임원의 눈빛에 거짓이 보이면, 그 사람은 다음날 짐을 꾸려야 한다.최고의 품질을 지향하는 정 회장은 비리는 가능성부터 끊어야 한다고 여긴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한 임원의 말이다. "임원들도 물론이거니와 외부 인사와도 독대를 잘 안하는 편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 청탁과 납품업체 청탁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납품업체 청탁을 조금이라도 들어주었다간 자동차 부품, 더 나아가 완성차 품질 혁신은 절대로 이뤄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임원들이나 친인척들이 이유 없이 협력업체를 들렀다는 소식을 접하면 정 회장은 엄청나게 화를 낸다. 그 정도로 사람관리에 엄격하다." 실적을 최우선으로 여기지만 실패에 대해서도 큰 관용을 베푸는 게 정 회장의 또 다른 특징이다.영업ㆍ노무ㆍ기획 쪽 인사들이 끊임없이 들락날락 했지만 연구ㆍ개발쪽은 거의 건드리지 않았다. 계획보다 연구 성과 도출이 늦어도 정 회장은 늘 기다려줬다. '파워트레인' 개발을 주도한 이현순 현대차 부회장은 올해 회사를 물러나면서 "정 회장의 끊임없는 지원과 신뢰 덕분에 하고 싶은 일을 신나게 할 수 있었다"며 "엔지니어로서 최고의 생활을 하도록 해준 정 회장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최근 들어 현대로템이 KTX와 K2 전차의 결함 문제에 휘말려 시끄러운 상황이다. 현대차 본사로 봤을 때 사회적 문제로까지 거론되는 '대 사건'이 벌어졌을 경우 대대적인 인사 조치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정 회장은 그대로 지켜보고 있다. 비록 지금 당장은 문제가 있겠지만 사람을 믿어보겠다는 것이다. 아버지 밑에서 그룹의 신사업을 주도했던 정 회장 자신이 기술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노력 끝에 해결해 냈던 과거의 경험이 반영된 것이라고 그룹 인사들이 설명했다.겉으로는 한 없이 강해 보이는 정 회장이지만 결국 사람에 대한 애정이 많은 여러 CEO중 한 사람에 불과하다.현대차그룹 고위 관계자는 "회의 시간에 엄청나게 혼을 낸 뒤 정 회장은 해당 임원에게 전화를 걸어 '꾸짖어서 섭섭했어?'라고 말해 서운하게 생각지 말라고 다독여준다. 또 얼굴을 마주할 때에는 등을 두들겨주며 격려를 해준다. 이 때 그는 이웃집 어르신과 다를 바 없다"고 전했다.MK리더십 특별 취재팀(이정일·채명석·최일권·김혜원·조슬기나 기자)MKleade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산업부 채명석 기자 oricms@ⓒ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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