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성호 기자]“이제 알아봐야죠. 앞으로 뭘 할지는 쉬면서 생각해 봐야죠.”최근 A대기업 고참 B부장이 명예퇴직을 결정한 후 의미 없는 억지미소를 입가에 흘리며 말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라고 우문을 던진 사람의 가슴이 오히려 먹먹해질 정도의 깊은 한숨이 배어 있는 이 대답은 B부장 뿐 아니다. 엄동설한에 회사에서 등 떠밀려 나가야 하는 이들의 한결 같은, 그리고 어쩔 수 없는 현답일 지 모른다.B부장의 나이 이제 52세다. 1958년 개띠. 한국인 기대수명 77세를 고려하면 앞으로 그는 운 좋게 다른 직장을 찾지 않는 이상 인생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5년이라는 결코 짧지 세월을 자영업이나 무직으로 지낼 가능성이 높다.앞으로 다가올 자녀 대학교 교육문제, 결혼문제, 자신의 노후 문제 등이 그의 어깨를 누르고 있지만 매월 통장에 입금되던 급여가 끊기면 이제 몸을 지탱해 줄 척추가 끊기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될 지 모른다.그래도 중소기업보다는 그나마 퇴직금이나 위로금을 조금 더 받았다는 것을 위로로 삼는다.B부장의 책상이 비어지는 동안 바늘구멍을 뚫고 고층빌딩 사무실 한켠에서 책상과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 신입사원 P씨는 연수준비에 여념이 없다.동료들과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어떻게 하면 좋은 연수성적을 받을 수 있을까 고민한다.회사에서는 연수성적이 향후 근무평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하지만 임원을 꿈꾸는 P씨는 단 하나의 흠결도 인정할 수 없다는 자세다. 그 비장한 각오는 장밋빛 미래에 대한 희망에 힘입어 미소로 변한다.올해는 아직 통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30대그룹 기준으로 작년에 이 같은 명퇴자의 눈물과 신입사원 미소의 교차인원을 따지면 약 15만4000명으로 추산된다.지난 1월 청와대를 찾은 재벌총수들은 2009년 30대그룹 신규채용이 전년대비 7만2863명 늘었다고 보고했다. 그런데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09년말 30대그룹 임직원수는 89만3000여명으로 전년말보다 8000여명이 오히려 줄었다.대통령에게 허위보고를 한 것이 아니라면 7만3000명이 새로 입사했고 8만1000명 가량이 회사를 떠났다는 이야기다.문제는 회사를 떠난 8만1000여명 가운데 정년을 채운 인원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대기업의 한 간부는 “정년을 채우고 회사를 떠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부장까지 오르는 것도 힘들지만 임원 승진 기회가 지나갔다고 생각되는 시점이 바로 알아서 명예퇴직해야 할 때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고 했다.명예퇴직 명칭은 자발적이지만 사실 속내는 비자발적 고용종료다. 자신이 원치 않지만 직장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를 보면 1990년대부터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사이 실업률이 줄었음에도 비자발적고용종료 위험과 단기고용 비율은 높아졌다. 이를 두고 노동유연성이 높아졌다고 표현하는 분석도 있지만 이는 명예퇴직이라는 멍에와 아픔을 먹고 자랐다.최근 통계에 따르면 올해 9급 공무원 경쟁률은 82대 1이었다. 7급공무원은 무려 115대 1까지 올랐다.시장은 노동유연성을 원하지만 정작 구직자들은 노동경직성을 원하며 월급이 적어도 그나마 오래 다닐 수 있는 공무원에 지금도 목을 매고 있다.박성호 기자 vicman1203@<ⓒ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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