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피플&뉴앵글] '캔버라'가 '세종시'에 주는 교훈

호주의 수도인 캔버라 전경

"호주의 수도가 어딘지 아니?"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뜬금없이 질문을 건넬 때가 있다. 이 질문을 던지면 친구들의 90% 이상은 "시드니 아니야?"라고 되묻는다. 그러면 난 "땡"이라고 말한다. 호주의 수도는 캔버라이기 때문이다. '캔버라(Canberra)'. 경제중심지 시드니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로 조용하고 한적한 도시다. 하지만 호주의 대표 대학교인 '호주국립대(ANU,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를 비롯해 각국 대사관, 수상관저 등 연방 행정에 관한 모든 기관들이 모여 있는 '작지만 당당한' 수도이다. 호주는 원래 지금 같은 한 국가의 모습이 아닌, 여러 식민 도시들로 이루어진 대륙이었다. 예컨대, 시드니는 지금처럼 호주의 한 도시가 아니라, 영국의 식민지 중 자치권을 행사하는 도시였던 것이다. 멜번, 브리즈번, 애들레이드 등 잘 알려진 도시들도 마찬기지다. 하나의 정부로써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약 100년 전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수도로 선택된 곳이 바로 '캔버라'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양대 도시였던 시드니와 멜번이 서로 수도가 되기 위해 치열한 알력다툼을 벌였던 것. 결국 수도를 새로 건설하는 중에는 멜번이 임시수도를 맡고, 새로 건설되는 수도는 시드니에서 최소 100km 이상 떨어진 곳에 만든다는 합의 하에 '연방제 형태의 호주'와 '수도 캔버라'는 탄생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캔버라의 수도 생성 과정은 비록 100년 가까이 된 얘기지만,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세종시 문제'와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 새 수도 건설이라는 측면이 그렇고,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거대 도시들의 기득권 싸움 문제도 그렇다. 노무현 정권 때 '천도 계획'으로 불렸던 신행정수도 건설 계획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좌절되면서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변했고, 이젠 서울대, 카이스트, 고려대 등 최상위권 대학의 제2 캠퍼스 조성을 통한 '교육· 과학 중심도시안'로 바뀌고 있다. 얼마 전엔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 TV프로그램에 직접 나와 '행정중심복합도시' 원안을 수정하겠다는 뜻을 강하게 피력하기도 했다. "행정 효율성이 저해된다"는 게 이유였다.

멜번이 임시 수도였을 때 연방정부로 쓰였던 건물

하지만 이를 쉽게 수긍하긴 힘들다. 효율성을 최우선 덕목으로 삼는 기업들도 새로 지은 사무소(세종시)에 관리임원(행정부처 장관)들을 보낸 뒤,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핑계되진 않기 때문이다. 대신 사장(대통령)은 화상회의 등을 통해 수시로 점검하면서 효율성 극대화에 주력한다. 수도권의 역차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캔버라만 해도 수도가 된 뒤에도 시드니· 멜번에 비해 성장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아직 캔버라 인구(40만 명)는 시드니의 10분의 1밖에 안 되며, 경제 및 무역, 문화의 중심 도시는 여전히 시드니다.우여곡절 끝에 수도가 된 '캔버라'는 이름이 가진 의미(Canberra, 호주 원주민어로 '만남의 장소'라는 뜻)처럼 드넓은 호주대륙을 한곳에 모으는 수도이자, 행정중심도시로써의 역할을 톡톡히 이행해 가고 있다. 한국의 행정수도 건설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이미 물 건너간 얘기지만, 행정복합중심도시라는 원안은 되도록 그대로 가져갔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쯤 한국의 정치인들도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한 호주의 수도 '캔버라'의 성공사례를 되새김질 해보는 것은 어떨까? 글= 김준용정리= 윤종성 기자 jsyoon@asiae.co.kr◇ 부산 출신으로 펑크음악과 B급 영화를 즐기는 김준용 씨는 한국의 도시 소음과 매연을 견디지 못해 도피유학을 결심했다. 딴지 관광청 기자로 재직하면서 필리핀과 호주의 오지만 골라서 돌아다닌 준용 씨는 요샌 득달같이 덤벼드는 호주의 파리 떼와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온라인뉴스부 윤종성 기자 jsyoo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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