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달리는 돈을 쫓는 사람들

지난해 24개 공기업의 순이익(3310억원)은 전년 대비 5조원 가까이 급감하며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3조원에 가까운 순손실을 냈고 석탄공사 등 총 4개 공기업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도 3000억원에 가까운 순이익을 기록한 공기업이 있다. 바로 마사회다. 지난해 마사회의 순이익은 전년(2064억원) 대비 약 30% 가량 증가한 2675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7조4222억원에 달했다. 이정도면 우쭐해 할 만한 성적이다. 불황속 호황을 기록한 마사회, 이들의 영업현장인 경마장을 찾았다.
<strong>◆저 말(馬)에 내 '한 방'을 건다 = </strong>일요일인 20일 오전,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의 한 경마장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 비가 내린 전날과 달리 화창한 날씨지만 모여드는 사람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많아졌다. 마사회가 운영하고 있는 이 곳은 실내에서 스크린으로 경기 내용을 보고 배팅을 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오전 11시부터 발매 창구가 열리고 마지막 경주는 오후 6시께까지 있다. 주말의 경우 15회 가량의 경기가 있다. 이 곳에서는 서울의 경기 뿐 아니라 부산이나 제주도에서 열리는 경기에도 배팅할 수 있다. 에어컨이 신나게 돌아가고있는데도 실내에 들어서자 후텁지근함이 훅, 하고 느껴진다. 뛰는건 말인데 가만히 서서 보고 있는 사람들의 손바닥과 등에는 땀이 배겨나온다.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50대 아주머니, 이따금 트레이닝복과 슬리퍼 차림의 청년이나 젊은 남녀 커플도 눈에 띈다. 그러나 손님의 대부분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4, 50대 중년 남성이다. 경마장을 찾게된 각자의 사연이 있겠지만, 이들의 목표는 하나다. 내가 배팅한 말이 '1착'으로 들어오는 것. 실제로 경주마를 보며 배팅하는 과천 경마장과는 달리, 이 곳은 대부분 '구경삼아'가 아니라 '돈을 벌어보려는' 사람들이 찾는다. 달리는 돈을 쫒는 사람들의 눈이 바쁘다.
경마장을 처음 찾은 기자가 그 열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을 때쯤 어디선가 큰 소리가 들려온다. 싸움인가, 흥미 반 걱정반에 시선을 돌리자 경마권 창구에 있는 직원에게 소리를 지르는 중년 남성이 눈에 들어온다. "너 XXX, 너 나와! 나오면 가만안둬. 내가 세상 끝까지 따라간다" 뭘 얼마나 잘못한걸까. 조용해진 뒤 해당 창구 직원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잔돈을 몇 천원 잘못 거슬러 줬단다. 조금이라도 일 처리가 늦어지면 줄을 선 사람들이 한꺼번에 폭발하기 때문에 서두르다보면 잔돈이 잘못가는 경우가 가끔 발생한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해요. 돈을 잃은 사람들이 분풀이 할 데가 없으니까 여기있는 여직원들에게 심한욕을 하기도 하죠, 뭐" 이제 이력이 났다는 듯한 직원의 대답이다.
<strong>◆대박을 위한 준비, 10원 혹은 10만원 = </strong>배팅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돈은 10원이다. 최소 10원부터 최대 10만원까지 한번에 마권을 구매할 수 있다. 실제로 50원을 창구에 내밀며 배팅하겠다는 사람도 있단다. 그래도 웃거나, 당황한 표정을 지어선 안된다. '지금 돈 없다고 무시하냐'는 까칠한 시비에 휘말리기 십상이므로. 도박 중독이나 불건전한 목적으로 마권이 구매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마사회는 마권구매 상한액을 1인 1회 10만원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맹점은 있다. 바로 무인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자동발매기다. 자동발매기를 통해 마권을 구입할 경우 10만원짜리 배팅을 10번 걸던, 100번 걸던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마사회 등에서 감사를 나오기도 하지만 이들의 눈을 피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창구에 가만히 서서 구경을 하고 있노라니, 한 아저씨가 만원짜리 한장을 창구에 우겨 넣는다. 얼굴에는 웃음이 한가득이다. 또 다시 직원을 귀찮게 했다. 알고보니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만 볼 줄 알았던 소위 '팁'을 주는 장면이었다. "가끔 경기가 잘 풀릴 경우에 마권을 산 창구에 가서 고맙다며 돈을 주는 경우가 있어요. 대부분 거절하는데, 돈을 놓고는 불러도 대꾸도 안하고 가는 경우가 많아서 본의아니게 '팁'을 받는 경우가 있죠" 한참을 별일 없이 경마장을 어슬렁거리는 기자에게 넉살좋은 아저씨 한 분이 다가와 먼저 말을 건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경마장 취재차 와서 분위기 파악중이라고 털어놓으니 3년 전 쯤부터 한 달에 한 번 꼴로 경마장에 찾는 다는 본인의 얘기를 해준다. "도박이라고 생각하고 일단 '한심한 사람'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아. 그냥 집에서 나설때부터 '오늘은 잘 될 것 같다'는 기분좋은 생각이 드는거야.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계속. 로또 사고 일주일동안 당첨금으로 뭐 할지 생각하는 것 처럼 마권을 사고 이번엔 될 것 같다는 기분, 그 맛에 하는거지" 아저씨의 시선은 곧 다음 게임을 안내하는 스크린으로 향했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강미현 기자 grobe@asiae.co.kr 이현정 기자 hjlee303@asiae.co.kr 김기훈 기자 core81@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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