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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묘함 속에 숨은 폭력성을 발견하다"...'물방울 화가' 김창열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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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김창열' 회고전
2021년 작고 이후 첫 대규모 회고전
생애 전반 창작 과정과 예술 세계 총망라
미공개 31점 포함 120여점 출품
'물방울'로 향하는 예술전환 과정 조명

"6·25전쟁 중에 중학교 동창 120명 중 60명이 죽었고, 그 상흔을 총알 맞은 살갗의 구멍이라고 생각하며 물방울을 그렸다. 근원은 거기였다." - 김창열

파리 예술가에서 '무슈 구뜨(Monsieur Gouttes/물방울)'라고 불린 김창열 화백의 예술세계가 '물방울'로 향하는 예술적 전환 과정을 조명하는 '김창열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다. 김창열(1929~2021) 작고 이후 첫 대규모 회고전으로, 미공개작 31점을 포함해 대표작과 초기작 120여점을 소개한다.

"오묘함 속에 숨은 폭력성을 발견하다"...'물방울 화가' 김창열 회고전 김창열 회고전이 열리는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내 '물방울' 설치작. 서믿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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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은 1950년대 앵포르멜(추상회화의 한 갈래로, 격정적이며 주관적 특징을 지님)운동을 주도하며 서구 현대미술의 어법을 한국적 정서에 접목하는데 앞장선 상징적 인물이다. 1965년 뉴욕을 거쳐 1969년 파리에 정착하기까지, 시대에 맞서 독창적인 예술에 도달하기 위한 실험에 열중했다. 1970년대 초반부터 그가 평생에 걸쳐 천착한 물방울은 김창열 작가를 상징하는 수식어가 됐다.


김창열의 '물방울', 요묘해 보이지만 폭력성 함의
"오묘함 속에 숨은 폭력성을 발견하다"...'물방울 화가' 김창열 회고전 전시장 입구에서 "살과 정신"이라고 적힌 작품 뒷면이 관람객을 맞는다. 서믿음

흥미로운 점은 물방울이 보이는 것과 달리 참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21일 서울 종로구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전시를 기획한 설원지 학예사는 "김창열은 전쟁 시절, 시체가 짓이겨질 때 내장이 튀어나오는 참혹한 장면을 목격했고, 이후 인간의 신체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물방울이 환상적이고 오묘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 정화되는 과정에서 인간의 폭력성을 함의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김창열은 생전 물방울의 의미에 대해 초기 "애도의 여정"이라고 밝혔고, 후기에는 "실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전시장 입구에선 작품의 뒷모습이 관람객을 맞는다. "살과 정신"이란 글귀가 눈에 띄는데, 설 학예사는 "작품 뒷면에서 전시를 시작하는 이유는 물방울의 이면을 조명하겠다는 뜻"이라며 "글귀가 이번 전시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상흔' '현상' '물방울' '회귀'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아울러 작가의 삶과 창작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미공개 자료와 작품들로 구성한 별도 공간도 마련했다.


16세 홀로 월남, 전쟁 상흔이 예술 토대로
"오묘함 속에 숨은 폭력성을 발견하다"...'물방울 화가' 김창열 회고전 김창열 '제사'(1964), 거친 질감의 앵포르멜 화풍이 드러난다. 서믿음 기자

'상흔' 섹션에선 김창열의 초기작을 중심으로, 작가의 예술세계가 형성된 시대적 배경과 활동을 살펴본다. 김창열은 평안남도 맹산 출신으로, 16세 경 홀로 월남해 고향을 떠났다. 그 과정에서 해방과 분단, 전쟁이라는 격동의 시기를 거치며 삶과 죽음의 문제를 필연적으로 내면화했는데, 이는 그의 예술세계 전반에 중요한 토대로 작용했다.


1950년대 후반, 김창열은 앵포르멜 운동을 이끌며 파리비엔날레(1961)와 상파울루비엔날레(1965) 등 국제무대에 참여해 한국현대미술을 세계 무대에 알렸다. 이 시기 작품은 대부분 '제사'란 이름을 지녔고, 물감이 덩어리져 굳으면서 표면에 육화된 흔적이 선명했다. 상처의 조형화적 면모가 엿보인다.

"오묘함 속에 숨은 폭력성을 발견하다"...'물방울 화가' 김창열 회고전 김창열 '해바라기'(1995). 앵포르벨 직전 시기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한 작품. 서믿음 기자

앵포르멜 이전 시기 작품으로는 1955년 작 '해바라기'와 경찰 시절 경찰전문학교의 격월간지 '경찰신조'의 표지화 작품이 최초 공개됐다.


'현상' 끔찍했던 뉴욕생활, 장기가 녹아내리는 듯한 표현 등장
"오묘함 속에 숨은 폭력성을 발견하다"...'물방울 화가' 김창열 회고전 김창열 '구성'(1970), 1965년 뉴욕으로 건너간 이후 앵포르멜의 두터운 질감에서 벗어나, 정제된 화면 위에 기하학적 형태와 착시적 공간감의 조형 실험을 전개하기 시작함. 서믿음 기자

'현상' 섹션에선 뉴욕과 파리 전환기의 작업을 중심으로 추상회화와 물방울의 기원을 암시하는 조형적 징후들을 살핀다. 김창열은 1965년 김환기의 권유로 록펠러 재단의 지원을 받아 미국으로 건너갔으나, 엥포르멜 회화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김창열은 자본주의 소비사회에 깊은 정서적 이질감과 소외감을 느꼈다. 그 영향으로 이후 앵포르멜의 두터운 질감에서 벗어나, 정제된 화면 위에 기하학적 형태와 착시적 공간감의 조형 실험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1969년 파리로 이주할 즈음에는 인체의 장기를 연상시키는 기하학적 형태가 녹아내리는 듯한 유기적 형상을 드러냈다. 이는 '물방울' 회화의 전조로 해석된다.


"오묘함 속에 숨은 폭력성을 발견하다"...'물방울 화가' 김창열 회고전 최초의 물방울 작품이라고 알려진 1972년 작보다 1년 빠른 1971년 제작된 'Waterdrops'(사진 왼쪽).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됐다. 서믿음 기자

이번 전시에선 뉴욕 시기 미공개 회화 8점, 드로잉 작업 11점을 최초 공개한다. 또한, 기존 최초의 물방울 작품으로 알려진 '밤에 일어난 일'(1972)보다 앞서 제작된 1971년의 물방울 회화 2점을 처음 공개한다.


'물방울' 물질적 형상 이상의 의미 드러내
"오묘함 속에 숨은 폭력성을 발견하다"...'물방울 화가' 김창열 회고전 김창열 '물방울'(1986), 얼룩과 콜라주 기법 활용해 '물방울' 예술언어 공고히 함. 서믿음 기자

'물방울' 섹션에선 비로소 물방울이 완결된 형태의 조형성을 드러낸다. 이는 파리 외곽 마구간 작업실에서 어렵게 생활하며 얻어낸 결과였다. 이 시기 김창열은 생계를 위해 일했던 넥타이 공장에서 익힌 에어스프레이 기법을 물방울 작업에 접목하는 등의 시도로 1973년 파리 현지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얼룩과 콜라주 기법을 활용하면서 물방울의 예술 언어를 확고히 했다. 당시 프랑스의 저명한 평론가 알랭 보스케는 "김창열의 물방울은 물질을 재정의하고 정신성을 제시하는 보기 드문 최면력을 지녔다"고 호평했다.


'회귀' 과거 상흔과의 화해
"오묘함 속에 숨은 폭력성을 발견하다"...'물방울 화가' 김창열 회고전 김창열의 '회귀 SNM93001'(1991). 어릴 적 배운 천자문에 물방울을 더한 건 삶의 상흔을 붓질로 꿰매는 행위로 해석된다. 서믿음 기자

마지막 '회귀' 섹션에선 천자문 활자와 이미지의 결합을 통한 새로운 표현 세계에 주목한다. 김창열은 어릴 적 배운 천자문을 습자지에 쓰고, 물방울과 결합해 새로운 이미지를 도출했다. 이는 마치 삶의 상흔을 붓질로 꿰매는 진혼의 행위와도 같았다. 이번 전시에는 7.8m 규모의 대형 작품 '회귀 SNM93001'(1991)가 처음 공개된다.


설 학예사는 "참혹한 전쟁을 포함한 모든 시기 작품에서 공통되게 노란색이 눈에 띈다"며 "인간의 폭력성과 죽음 앞에서 끝까지 부여잡고 있었던 것이 노란색이지 않았나 싶다. 이에 대한 연구도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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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그동안 미흡했던 작가의 연구를 보완하고 공백으로 남아있던 시기의 작품을 통해 김창열 예술세계를 총체적으로 살펴보는 계기"라며 "김창열이라는 예술가를 새롭게 발견하고 재정립하는 기회이자, 그의 삶과 예술이 지닌 고유한 미학과 정서를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12월21일까지 이어진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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