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때 시가지 형성…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한 달에 도로 포장 자갈 50~70개 도난"
'북쪽의 베네치아'로 불리는 벨기에의 도시 브뤼허를 찾은 관광객들이 도로포장에서 자갈을 뜯어내 훔쳐 가는 사례가 많아 시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24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 보도에 따르면 벨기에의 유서 깊은 도시 브뤼허는 관광객 과잉과 그에 따른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관광객들이 기념품으로 자갈을 훔쳐 가는 사례가 급증해 이로 인해 도시의 문화유산이 훼손되고 보행자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유럽 중세에 시가지가 형성된 브뤼허의 구도심은 건축물 등 보존 상태가 양호해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프랑키 데몬 네덜란드 연방하원의원 겸 브뤼허 시의원은 CNN에 "이 도시에서 파괴돼 도난당하는 도로포장 자갈의 수가 한 달에 50~70개에 이르며 봄과 여름철 등 관광 성수기에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전했다. 자갈이 사라지는 주요 지역은 미네워터, 비스마르크트, 마르크트, 그루트후세박물관 등이다.
이 같은 자갈 도난은 단순한 기념품 수집을 넘어 도시의 수백 년 된 역사적 경관을 훼손하는 행위다. 또 자갈이 사라진 자리에 생긴 틈은 보행자들에게 걸림돌이 돼 안전사고의 위험까지 키우고 있다. 브뤼허시의 공공시설 관리업무를 총괄하는 데몬 의원은 "자갈 도로포장이 망가지면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넘어져 다칠 우려가 있고, 복구하려면 제곱미터(㎡)당 200유로(31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짓을 한 이들 중에는 자갈을 파낸 빈자리에 식물을 심어놓은 경우도 있었다"라면서 "기발한 행동이긴 하나 우리가 공유하는 유산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그저 우리 도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는 것뿐"이라면서 "브뤼허의 거리를 걷는 것은 여러 세기 동안 쌓인 역사를 밟고 걷는 것과 같다. 이 자갈들은 그냥 돌덩이가 아니라 우리 도시의 영혼의 일부이므로 우리는 방문객들이 그 아름다움을 훼손하지 말고 제자리에 둬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CNN은 브뤼허가 이탈리아 베네치아나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마찬가지로 관광객 과잉으로 인한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브뤼허는 몰려오는 단기 관광객들의 규모를 통제하기 위해 2019년부터 인근 항구인 제브뤼허에 정박이 허용되는 유람선의 수를 줄이고 파리 등지에서 진행했던 브뤼허 관광 광고를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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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브뤼허 외에도 이탈리아의 사르데냐의 분홍빛 해변에서 모래를 가져가거나 로마의 고대 자갈길 삼피에트리니에서 자갈을 훔치는 등 관광객들의 무분별한 기념품 수집은 유럽 전역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김현정 기자 khj2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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