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대리석이나 청동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기자수첩] 동상이몽 대신 통합의 동상을](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5042209353529147_1745282135.jpg)
한 사람의 가장 빛나던 시절의 모습을 박제한 동상. 몇억씩 들여 압도적인 크기로 남겨두는 것은 후손들이 해줄 수 있는 최대의 예우다. 그러나 '누구를 세울 것인가'의 문제로 넘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동상을 세우려는 자와 무너뜨리려는 자, 동상이몽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최근 동상에 대한 인식은 변화하고 있다. 위인이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배우 동상을 아무 데나 세워버리자는 이야기부터 더 이상 인물 동상은 필요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해외에서도 이미 2020년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수많은 위인 동상을 참수한 뒤 동상을 세우는 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시작됐다.
이들이 의문을 갖는 이유는 이렇다. 첫 번째는 동상이 개인의 업적에 대한 평가와 무관하게 시대의 필요에 따라 세워진다는 것이다. 가령 6·25 전쟁 후에는 체제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다. 반공사상을 강조하던 시기 초등학교마다 들어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친 이승복 소년 동상, 제주 4·3 사건의 학살자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공비 소탕'에 공을 세웠다며 세워진 박진경 대령 동상을 일례로 들 수 있다. 또 1990년 이후 건립된 위인 동상 중에는 오로지 지자체의 관광객 유치를 위해 소환된 과거의 인물이 더 많다.
두 번째는 여러 사람이 이뤄낸 역사가 동상 하나로 축소돼 버린다는 것이다. 혁명 당시 희생당하거나 불의에 맞선 수많은 사람이 주목받은 인물 몇 명의 동상으로 압축되고 만다. 영국 가디언은 여성 흑인 운동을 주도한 영웅의 동상을 예로 들며 "혁명은 한 명의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대의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희생한 집단의 노력"이라며 "무명의 용사들을 위한 동상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꼬집기도 했다. 어떤 인물이든 동상을 세워 우상화하고 치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파격적이지만, 동상을 두고 벌어지는 끊이지 않는 공과 논쟁을 고려하면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본받을 사람 정해주는 사회가 어떤 통합을 이끌 수 있을까. 정치인들의 출마 선언을 보고 있으면 동상 없애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맥락도 모른 채, 여러 장군 동상 앞에서 뜻을 이어받고 역사를 새로 쓰겠다고 비장하게 다짐한다. 심지어 출마 선언에서 다시 한번 공과 논란이 있는 전 대통령들의 동상을 세우자며 '동상 하나 못 세우게 하는 나라'라고 지적하는 정치인도 있다. 이대로라면 동상을 세우려는 자, 무너뜨리려는 자 사이의 동상이몽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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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름과 얼굴이 없는 사람들의 동상 아닐까. 희생된 소방관이나 경찰, 군인의 모습을 상정해 만든 동상, 당시 피해자들의 평균 연령을 토대로 가상의 얼굴을 고려해 만든 평화의 소녀상 등 어디에나 있음직한 누군가의 모습이다. 역사는 대리석이나 청동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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