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3만여호 빈집 심각
지방 아닌 국가 책임 과제
방치 아닌 재생의 대상으로
지역 현장을 방문하다 보면, 늘 시선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람이 떠난 채 방치된 집, 빈집이다. 한때 삶의 터전이었을 공간이 비어 있다는 사실은 지역의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씁쓸하게 말해준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빈집이 몇 호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필자는 한동안 정확히 답할 수 없었다. 빈집 현황은 시·군·구에서 개별적으로 관리하고 있으며, 시·군·구별로 조사 주기와 방식이 제각각으로 달라 전국 단위로 확인할 수 있는 현황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관부처도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로 나누어져 부처별로 필요에 따라 관리하고 있다. 그나마 통계청에서 조사하고 있는 미거주주택 현황이 통계로 집계되고 있으나 이는 조사 시점에 거주자가 없는 집으로, 1년 이상 거주 또는 사용하지 않은 주택이라는 법상 빈집 정의와 차이가 있다.
빈집은 지역 생활환경뿐만 아니라 부동산 가치 등 다양한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주민 삶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지만 그동안 국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소유자 간 책임이 분산돼 있어 현황조차 명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그러나 인구가 감소하고, 전체 인구 중 고령인구 비율이 20%를 넘어선 상황에서, 빈집 문제는 더 이상 누구의 책임이냐를 따질 수 없는 공동의 과제가 됐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9월,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공동으로 '빈집정비지원팀'을 구성하고 범정부 차원의 대응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전국의 빈집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행정조사를 실시하고 빈집 정보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빈집애(愛) 플랫폼 구축에도 착수했다.
또한 빈집정비지원팀에서는 4개 부처와 17개 시·도, 시도지사협의회,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등의 지방정부, 그리고 시도연구원, 지방세연구원, 국토연구원, 한국부동산원, 민간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빈집 민관 협의회를 구성하고 다양한 의견도 수렴하고 있다.
지원팀에서 추진한 행정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전국 빈집은 13만4000호에 달하며, 이 중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4만6000호는 철거가 필요한 상태였다. 시·군·구는 빈집의 노후도 등을 파악하기 위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빈집을 효율적으로 정비하기 위한 정비계획을 수립해야 하는데, 아직 정비계획도 수립하지 못하고 있는 시·군·구도 많은 상황이다.
이러한 결과는 빈집 문제가 소유자와 시군구만의 과제가 아니라, 시도와 국가까지 책임을 함께 나눠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일수록 빈집은 증가하는데, 그와 동시에 빈집을 관리할 시·군·구의 행정·재정적 여력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소유자 입장에서도 철거에만 수천만 원이 드는 데다 해당 지역의 인구 유출로 빈집을 매수할 수요자조차 찾기 어렵기 때문에 빈집을 자발적으로 정비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빈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 시·도, 시·군·구, 그리고 소유자의 역할과 책임을 각각 명확히 해 시·군·구에는 행정·재정적 지원을, 소유자에게는 자발적 정비를 유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정부는 이러한 정책 방향 아래 전국 빈집 관리체계 구축, 지자체의 업무절차 간소화와 예산 지원, 민간의 자발적 정비 활성화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빈집 정비를 위한 종합계획을 수립 중이다.
빈집은 더 이상 방치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중앙과 지방 그리고 소유자와 민간이 힘을 모아 빈집을 정비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채우고, 지역을 되살린다면 지역은 지속가능한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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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보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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