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러시아 출신으로 한국으로 귀화한 벨라코프 일리야가 러시아 대표 작가 26인의 문장을 통해 러시아 문화를 소개한다. 고전부터 현대 문학에 이르기까지 26인 작가의 작품 속 대표 문장 36개를 뽑아 소개한다. 이를 통해 우리와 다른 러시아 특유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일례로 '안나 카레니나'는 우리에게 여성이 보수적인 사회에서 겪는 사회적 억압으로 읽히지만, 러시아에서는 사회에 도전한 인간이 받는 심판으로 읽힌다. 러시아 문학을 넓게 이해하는 배경지식을 제공한다.
'안나 카레니나'는 19세기 러시아의 취약한 여성권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러시아 사회의 보수적인 가치에 도전한 인물이 겪는 비극을 말하는 것으로 읽어야 한다. 사회의 압박을 벗어나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읽는 게 타당하다. - 레프 톨스토이 |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나름으로 불행하다” - 레프 톨스토이
“사람들의 심장을 동사로 불질러라”라는 말은 러시아 문학의 본질을 대변한다. 이 표현은 ‘말로 생각하게 만들어라’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러시아에서는 문학 작품이 단순히 쓰이는 것이 아니라 깊은 의미를 담아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푸시킨은 이런 생각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글은 사람을 생각하게 하고, 자극하며, 마음속에서 열정의 불꽃이 일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 알렉산드르 푸시킨
러시아에서는 과속 과태료를 받는 일이 흔하다. 그럴 때면 고골이 소환된다. 집으로 과태료 통지서가 날아오면, 아내는 잔뜩 성이 나지만 남편은 반성은커녕 이렇게 말하며 아내의 속을 뒤집어놓는다. “나는 어쩔 수 없는 러시아 사람인가 봐. 차를 타고 빨리 달리지 않으면 무슨 맛으로 살겠어?” - 니콜라이 고골
러시아 사회는 서구보다 덜 개인주의적이지만, 동양보다 개인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는 특성을 지닌다. 서구 문화에서는 오로지 개인의 행복이, 동양 문화권에서는 집단의 행복이 더 강조된다면, 러시아는 개인을 중심으로 그 개인이 속한 소규모 공동체(가족, 친구, 직장)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긴다. - 이반 투르게네프
한국에서는 나이가 관계를 앞서지만 러시아에서는 나이보다 관계가 더 중요하다. 가족이나 아주 친한 사람이면 나이와 관계없이 반말을 쓰는 게 자연스럽다. 존대의 기준이 한국과 다른 것이다. - 세르게이 예세닌
‘불꽃’ 같은 인생의 의미는 ‘남들과 꼭 다르게 하라’다. 남과 같아진다는 것은 바로 평범해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범해진다는 것은 바로 썩는다는 뜻이다. - 막심 고리키
만약 동료의 위법 행위를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러시아인이 아니다. 법대로 친구를 신고하는 행위는 친구를 배신하는 것과 같다. 그런 행위를 하면 온 사회가 당신을 비난할 것이다. 법이 어떻든, 친구를 배신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며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사람’이라면 가족과 친척, 친구를 보호하고 지켜야지,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법은 오늘 존재하지만 내일이면 사라질 수도 있다. 반면 친구는 신이 주는 영원한 축복이다. - 스투르가츠키 형제
러시아의 문장들 | 벨랴코프 일리야 지음 | 틈새책방 | 352쪽 | 1만9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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