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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굽는 타자기]실리콘밸리 눈부신 성장, 혁신일까 욕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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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집값·인종차별·소득격차
치열한 교육 경쟁과 자살률…
남을 짓밟는 그릇된 자본주의
미국 아닌 우리 이야기일수도

‘시간이 곧 돈’은 아니었다. 19세기 중반 지금의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인 알타 칼리포르니아에 살던 원주민들에겐 그랬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이동하며 먹을거리를 찾았고, 시간은 단순히 자연의 변화를 가늠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그러나 ‘포티나이너스’(19세기 중반 금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몰려든 이들)라 불리는 앵글로계 백인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그들의 삶은 급격히 바뀌었다. 금을 캐기 위한 물길에 휩쓸려 집터는 흙더미가 됐다. 생을 유지하기 위해 고강도 저임금의 생활을 감내해야했다. 황금 사냥꾼들은 적은 자본으로 최대한의 노동력을 확보하려 했다. 광활한 평원에 채굴 작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원주민들에게도 시간은 곧 돈이 됐다. 그로부터 약 200년 동안 한 도시를 중심으로 비슷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반복됐다. 비싼 집값과 높은 교육열, 스탠퍼드대학의 벤처 꿈나무들로 유명한 인구 7만의 도시, 팰로앨토에서 말이다.


[빵 굽는 타자기]실리콘밸리 눈부신 성장, 혁신일까 욕망일까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북서쪽에 자리한 소도시 팰로앨토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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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팔로알토, 자본주의의 그림자’에서 저자 말콤 해리스는 황금광 시대부터 실리콘밸리의 전성기까지 미국식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적자’들을 추적한다. 새로운 기술이 발명될 때마다 돈을 벌 기회가 찾아왔다. 금광에서 쏟아진 돈은 선키스트(Sunkist) 같은 거대 농업 협동조합을 탄생시켰고, 그들이 생산한 농산물은 북미 대륙을 가로지르는 철도를 낳았다. 철도 무역은 은행을 만들었고, 은행은 세계 곳곳에서 제2, 제3의 골드러시를 일으킬 투자금을 창출했다. 그렇게 축적된 자본은 미사일과 레이더 개발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트랜지스터, 무선통신, 개인용 컴퓨터로 진화했다. 팰로앨토의 기업가들이 자본을 축적하는 원리는 복잡하면서도 한편으론 단순했다. 저비용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한 노동력을 확보할 것, 그리고 그들이 절대 고용주에게 반기를 들 수 없도록 만들 것. 이를 위해 인종과 계급 간의 ‘차별’을 체계적으로 설계했다.


차별은 팰로앨토가 낳은 최고의 발명품이다. 이곳에서는 이를 ‘바이오노믹스’(Bionomics·생태학적 경제학)라 부른다. 그 기원은 19세기 사업가 릴런드 스탠퍼드에서 찾을 수 있다. 금광과 대륙 횡단 철도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그는, 저임금에 반발하는 노동자들을 피해 교외 저택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그는 경마 산업에 취미를 붙였고, 전통적인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말(馬) 육성법을 개발했다. 유망한 망아지를 혹독한 훈련을 거쳐 뛰어난 경주마로 키워내는 것이 핵심이었다. 실컷 키워 놓고 어른말이 돼 다리가 부러질 바에야 한살 때 훈련하다 다리가 부러지는게 차라리 경제적이란 판단이다.


팰로앨토의 지배층이 신봉하는 바이오노믹스는 이렇게 태어났다. 우생학 중심의 바이오노믹스는 천재가 어릴 때부터 경쟁을 통해 더 높은 단계로 올라선다는 성공 신화를 무한 추종한다. 인종간 능력 차이는 분명하며 각자에 맞는 일은 정해져 있다는 과격한 논리도 가능해진다. 릴런드는 세계 여행 중 장티푸스로 사망한 아들을 기리기 위해 스탠퍼드대학을 설립했는데, 이곳에 입학한 젊은이들은 사실상 ‘우량마’를 길러내듯 훈련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오노믹스로 키운 괴물들은 세계로 진출했으며, 오프쇼어링을 통해 값싼 노동자들을 찾아내 생산비 절감의 주요한 수단으로 삼았다.


[빵 굽는 타자기]실리콘밸리 눈부신 성장, 혁신일까 욕망일까 스탠퍼드대 캠퍼스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에서 했던 유명한 연설 ‘Stay Hungry, Stay Foolish(늘 갈망하고, 늘 어리석은 듯 행동하라)’를 기억한다. 많은 사람이 이를 도전 정신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며 열광했다. 하지만 (바이오노믹스를 완벽히 체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잡스가 과로와 스트레스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폭스콘 노동자들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고 상상해 보라. "배고프고 멍청한 채로 살아야 해." 끔찍하지 않은가. 실제로 폭스콘 공장 옥상엔 자살 방지 그물이 설치됐고, 잡스는 "폭스콘 자살율은 미국 전체의 자살율보다 낮다"고 한마디 거들었을 뿐이다. 아마존 프라임 배송서비스나 우버도 마찬가지다. 결국엔 첨단기술이라는 미명하에 노동자 착취로 배를 채운다. 그래서 저자는 "실리콘밸리는 '거품'일 뿐"이라고 일갈한다. 그런 것은 곧 꺼질 운명이라는 것이다.


미국식 자본주의를 열렬히 추앙하는 한국이라고 다를까. 부동산 가격을 통한 인종 차별과 소득 격차, 치열한 교육 경쟁과 그에 따른 청소년들의 높은 자살률. 팰로앨토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우리 현실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남을 밟고 올라서야 더 멀리 볼 수 있다’는 그릇된 자본주의 철학이 마치 유령처럼 우리 곁을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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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알토, 자본주의 그림자ㅣ말콤 해리스 지음ㅣ이정민 옮김ㅣ매일경제신문사ㅣ570쪽ㅣ2만6000원


[빵 굽는 타자기]실리콘밸리 눈부신 성장, 혁신일까 욕망일까



박충훈 콘텐츠편집2팀장 parkjovi@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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