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난 가운데, 이를 반길 국가가 러시아뿐만은 아닐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북한 역시 이러한 상황을 매우 기쁘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해 "평화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일축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전쟁을 끝내기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협상에 더욱 집중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종전이 북한에 불리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의 협상을 우선시할 경우 북한도 상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특히 러시아가 협상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는다면, 이는 북한에 외교적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러·우 전쟁이 끝나더라도 북한 병력과 기술 인력은 러시아에 남아 추가 훈련을 받거나 비밀 작전에서 용병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또한 계속해서 러시아 건설현장으로 노동자를 파견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에 입국한 북한 노동자는 1만3000명으로, 2023년과 견줘 12배 증가했다. 러·우 전쟁이 끝나든 그렇지 않든, 이러한 흐름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무기 거래 역시 계속될 수 있는데, 이는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의 군수품 재고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이 만약 트럼프 대통령과 유리한 협상을 한다면, 북한·러시아 동맹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최우선 목표는 미국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므로, 그는 미국과 러시아 간 협상의 흐름을 면밀히 주시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연합(EU)과 우크라이나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과 양자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김 위원장에게는 긍정적인 신호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푸틴 대통령과의 통화에 대해 "길고 매우 생산적이었다"고 평가했으며 두 정상은 곧 대면 회담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회담이 완전히 실패한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만날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만남도 추진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 과정에서 한국, 일본과 같은 전통적인 동맹국들을 배제할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한국 정부는 오랫동안 북·미 협상에 대한 경계심을 가져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의 협상을 위해 EU와 우크라이나를 배제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절엔 한국이 북한과 미국 간의 중재자 역할을 했지만, 현재 윤석열 정부는 남북 관계가 극도로 악화한 데다 정치적 혼란이 심화하면서 중재자 역할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푸틴 대통령을 중재자로 활용할 수도 있다.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개인적 친분이 두텁기 때문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 이후 푸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관계가 개선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의 협상파트너로서 한국 외교관들보다 푸틴 대통령을 더 신뢰할 수 있다.
러시아가 이미 미국과의 협상 내용을 북한과 공유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주 푸틴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북한 고위 관리와 회담했다.
러시아가 북한 문제의 중재자로 나설 이유는 충분하다. 첫째 러시아는 지난 2년 동안 북한으로부터 받은 상당한 군사 지원에 큰 빚을 지고 있다. 또한 북·러 상호 방위 조약을 고려할 때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 한반도에서 충돌이 발생할 경우 러시아가 북한을 방어해야 할 가능성이 크게 줄어든다. 이는 모스크바에도 이익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중재자로 나설 경우 워싱턴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낼 여지가 많다. 지난달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 러시아대사는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 대화 재개 가능성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협상 테이블로 복귀하려면 미국의 양보가 필요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러시아 편에 서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발언을 한 바 있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최근 우크라이나 국경 회복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이 협상을 통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작다고 밝힌 것이 그 예다. 만약 푸틴 대통령이 미국의 이러한 기조를 잘 살려 협상을 끌어낸다면 김 위원장도 미국과의 외교에 대해 더욱 매력적으로 느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북한에 대한 경제적 제재 해제나 경제적 양보를 하기 꺼렸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를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북한을 자극한다는 것을 이미 목도했다. 그는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10배 더 부담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태도는 김 위원장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규모를 축소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며, 이는 북한의 핵심 목표 중 하나다.
북한은 이제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행보를 면밀히 주시할 것이다. 러시아가 트럼프 대통령의 대(對)우크라이나 강경 노선을 환영하고 있지만, 종전 협상 합의는 여전히 요원하다.
만약 푸틴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협상을 성사시키지 못하거나, 러·우전쟁이 장기화한다면, 북·미 외교가 재개될 가능성은 작아진다. 대신 북·러 동맹이 더욱 강화될 것이며, 북한의 대미 적대감도 커질 것이다.
확실한 점은 하나다. 미국과 러시아 간 러·우 전쟁 종전 협상 결과는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할 의향이 있는지와 함께 북·미 관계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만약 푸틴 대통령이 유리한 협상을 끌어낸다면,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례적인 외교 전략의 다음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SCMP 칼럼]트럼프-푸틴 평화협정이 북한에 희소식인 이유](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5030615241157610_1741242251.jpg)
가브리엘라 버낼 박사
이 글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칼럼 Why a Trump-Putin Ukraine peace deal could be good news for North Korea를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지금 뜨는 뉴스
※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