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재무장 계획' 공개
국방 지출 확대 발목 잡는 재정준칙 유예
독일 방위비 확대 강조하며 분위기 이끌어
"우리는 재무장의 시대에 있다(We are in an era of rearmament)."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4일(현지시간) 브뤼셀에서 언론에 보낸 성명에서 이같이 말하며 유럽연합(EU)의 방위비 증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구 동맹이 아닌 러시아와 밀착하면서 유럽의 안보 위기가 고조되고 있어서다.
미국과 유럽국가 간 동맹이 약화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모든 군사 원조 중단을 선언하면서 유럽은 단기적으로는 우크라이나를 돕고, 장기적으로는 러시아로부터 유럽을 방어할 준비를 하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 유럽연합(EU)이 4일 회원국의 방위비 증액을 촉진하기 위해 최소 8000억유로(약 1229조원)에 달하는 자금 동원 계획을 발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일명 '유럽 재무장 계획'을 27개 회원국 정상에게 제안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계획은 유럽 지도자들이 트럼프의 요구에 패닉에 빠져 있는 순간에 중요한 정책 변화를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집행위는 개별 회원국 차원에서 국방 부문에 대한 공공자금을 적극 동원할 수 있도록 EU 재정준칙 적용을 유예하는 국가별 예외조항(national escape clause)을 발동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회원국은 재정준칙에 따라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각각 GDP의 3% 이하, 60% 이하로 유지해야 하고 이를 어길시 EU 차원의 제재가 부과되는데 이를 면제해준다는 것이다.
다만 EU 이사회가 예외조항을 승인한다고 하더라도 개별 국가들이 추가 예산을 지출하고 적자를 늘리기로 결정할지는 불분명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방비 지출은 나라별 재정 여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데다 국방비를 늘리려면 의료 서비스, 사회서비스와 같은 곳에서 지출 다이어트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EU 이사회가 이 조항(scape clause)을 승인한다고 하더라도, 개별 국가들이 추가 예산을 지출하고 적자를 늘리기로 결정할지는 불분명하다"고 했다.
EU가 제안한 재무장 계획에는 EU 회원국들에 국방 관련 차관을 제공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이 자금은 대공 및 미사일 방어, 포병, 드론 및 안티 드론 시스템, 사이버 기술 및 인프라 프로젝트와 같은 다양한 투자에 활용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을 위한 자금은 자본시장으로부터 조달할 예정이라고 EU 집행위원회 고위관계자가 전했다.
국방과 안보 예산 늘리기에 굼떴던 유럽국가들이 재무장 계획에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 배경에는 독일이 있다고 외신들은 짚었다. 앞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차기 총리는 4일 독일 헌법을 개정해 국방과 안보 지출을 재정 지출 한도에서 면제토록 조치했다. 그는 국가를 방어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라고 언급했고 유럽이 국방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독일의 결정이 EU의 26개 회원국이 6일에 모여 EU 전체에 걸쳐 군사 지출을 늘리는 방법을 논의하기 전에 도전장을 던졌다"면서 "이번 발표가 유럽 방위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고 해석했다.
독일의 변화를 끌어낸 것은 다름 아닌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는 우방국인 캐나다, 멕시코에 가차 없이 관세를 부과했고 중국에 추가 관세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EU를 향해서도 관세 공격을 예고했다. 관세 폭탄에 이어 유럽대륙의 안보 위기에도 불을 지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설전을 벌인 뒤 결렬된 정상회담 이후 우크라이나에 군사 원조를 끊겠다고 선언해, 러시아 부상에 노심초사하고 있는 유럽국가들의 근심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독일 사회민주당(SPD)의 라르스 클링베일 대표는 "지난 금요일 젤렌스키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있었던 일을 보면, 유럽의 국방과 안보를 위해 훨씬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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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유럽이 재정준칙을 완화해가며 방위비를 늘리기로 하자 유로화 가치가 올해 들어 최고치로 뛰었다. 방위비 확대 등 이 같은 계획이 경기 부양 효과를 낼 것이란 기대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외환시장에 따르면 유로화는 4일 오후(현지시간) 한때 전장보다 0.6% 이상 오른 1유로당 1.055달러 선에서 거래됐다. 이는 지난해 12월10일 이후 3개월 만에 최고치다. 5일 오전 8시58분 기준으로는 1유로당 1.062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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