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재집권 한 달
관세로 시작한 트럼프 2기…신팽창주의 예고
동맹·가치, 국제질서 대신 극한의 실리 추구
親이민·환경·다양성정책 폐기 '바이든 지우기'
"광란의 4주 속 美 지워져…국제사회서 후퇴"
취임 일성으로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백악관 복귀 한 달을 맞았다. 불과 한 달 만에 대통령 직권으로 정책을 밀어붙이는 행정명령을 70건가량 쏟아내며 압도적인 물량 공세와 속도전을 펼쳤다. 내부적으로는 불법이민 금지·다양성 정책 폐기 등 '바이든(조 바이든 전 대통령) 뒤집기', 대외적으로는 동맹과 가치, 국제질서를 무시한 관세폭탄·영토 야욕 노골화 등 '미국 우선주의' 행보에 속도를 내며 자국은 물론 세계를 충격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트럼프 2기는 좌충우돌했던 집권 1기 때와는 달리 지난 4년간 철저한 재집권 준비와 충성파 참모진을 등에 업고 취임 4주 만에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시대를 급속히 열어젖혔다는 평가다. 현지 언론은 "광란의 4주 속에 바이든이 남긴 미국은 완전히 지워졌다", "트럼프는 단 4주 만에 미국의 신뢰를 낮추고 미국과 세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후퇴했다"는 분석을 쏟아냈다.
'동맹도, 가치도 없다' 관세로 시작한 트럼프 2기…신팽창주의 예고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위협'으로 집권 2기를 시작했다. 국가별 관세, 품목별 관세, 상호관세 조치를 끊임없이 쏟아내며 전 세계 주요국을 상대로 엄포를 놓고 세계 무역 질서를 무너뜨렸다. 그는 첫 관세 조치로 펜타닐 마약과 불법이민자 유입을 이유로 캐나다·멕시코산 모든 수입품에 25% 관세, 중국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캐나다·멕시코에 대한 관세는 일단 한 달 유예했지만, 우방을 향해 관세 칼날을 겨눴다는 점에서 미국의 이익 앞에선 동맹도, 가치도 없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분명히 전달했다. 이후 모든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 공식 발표에 이어, 이르면 3월 자동차·반도체·의약품에도 25% 이상 관세를 매기겠다고 예고했다. 품목별 관세 대상으로 목재·임업 관련 수입품도 추가했다. 다만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조치를 사전 예고하는 방식으로 주요국과의 거래 가능성을 열어뒀다. 각국 정부와 기업에 관세를 낮추거나 피할 수 있는 협상안을 가져오라는 의미다. 그는 일본, 인도 등 각국과의 정상 외교에서도 무역적자 해소를 요구하며 대미 투자 및 미국산 수입품 확대 약속을 받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영토 야욕을 드러내며 팽창주의 노선을 걷고 있다. 캐나다, 파나마 운하, 그린란드, 가자지구에 대한 소유·통제권 확보를 거듭 주장하는가 하면 400년 넘게 써 온 멕시코만 명칭을 미국만으로 바꿔버렸다. 그는 캐나다의 미국 51번째 주(州) 편입, 파나마 운하 통제권 확보를 주장하고 덴마크령인 그린란드 매입 의사를 밝혔다. 심지어 중동의 화약고인 가자지구를 휴양지로 개발해 "우리가 가자를 가질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뉴욕 부동산 개발업자 관점의 발언이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한 달간 보여 준 대외 정책 키워드는 미국의 이익과 힘의 논리다. 동맹·우방, 가치와 국제사회 질서는 없다. 미국 우선주의 아래 극한의 실리와 거래만이 존재한다. 우크라이나를 '패싱'한 미국과 러시아의 종전 협상은 트럼프식 대외 정책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 피해자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선거를 치르지 않은 독재자"로 칭하고, 전쟁의 탓을 그에게 돌렸다. 3년 전 우크라이나 침공을 결정한 전쟁 가해자로 올해 집권 25년을 맞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감쌌다. 여기에 그동안 무기 지원 등을 이유로 우크라이나에 매장된 희토류 지분 50%를 요구, 사실상 우크라이나를 자원 식민지로 삼으려는 광물 협정 체결을 압박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은 유럽·중동·아시아의 동맹국을 방어하겠다고 맹세함으로써 자유무역과 안정의 세계적 보증인 역할을 맡았고, 이같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이 주도한 동맹 체계는 미국의 힘을 강화했다"면서 "하지만 트럼프는 단 4주 만에 미국 외교 정책 방향을 극적으로 바꿨다. 미국은 신뢰도가 낮아진 동맹이 됐고, (트럼프는) 미국과 세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후퇴했다"고 비판했다.
親이민·환경·다양성 정책 폐기…연방정부 구조조정 속도
트럼프 대통령은 내부적으로는 '바이든 지우기'를 골자로 각종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는 취임 첫날 불법이민자 유입을 막기 위해 남부 국경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석유·가스 등 화석연료 생산 확대 목적으로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도 선언했다. 유화적인 이민 정책과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펴 온 바이든 전 대통령의 정책 기조를 완전히 뒤집는 시도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수자 권리를 위해 바이든 전 대통령이 중시해 온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도 폐기 처분했다. 연방정부 정책에서 인정하는 성별을 남녀로 이원화하고 신병 모집에서 성전환자 제외, 교내 여성 스포츠 경기에서 성전환자 참가 금지 조치를 도입했다. '바이드노믹스(바이든 대통령의 경제 정책)'의 대표 정책으로 꼽히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지원법(CSA) 보조금 혜택도 축소·폐기하려 하고 있다.
아울러 '퍼스트 버디(대통령의 1호 친구)'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겸 정부효율부(DOGE) 수장 주도 아래 연방정부 구조조정 작업도 급속히 추진 중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의 해외 원조를 담당하는 미 국제개발처(USAID) 해체를 시작으로 국방부, 교육부 등 전 부처의 인력·비용 감축 작업에 착수했다. 무엇보다도 USAID 해체는 군사력이 아닌 해외 원조를 통해 개발도상국과 빈곤국을 민주화하고 미국 편으로 만든 원조 외교의 종식을 의미한다. 벌써부터 해외 원조에 있어 최대 패권 경쟁 상대인 중국이 미국의 빈자리를 차지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지금 뜨는 뉴스
미 매체 악시오스는 "트럼프 1.0과 달리 계산된 이 혼란은 MAGA를 제도화하고, 대통령의 적들을 마비시키고, 워싱턴의 기득권층을 영원히 무너뜨리기 위해 설계됐다"며 "강력하고 완고하며 역사적으로 인기 있는 MAGA 대통령의 지난 4주간 광란의 임기 속에 조 바이든이 1월 20일에 남긴 미국은 더 이상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지워졌다"고 평가했다.
뉴욕(미국)=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