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이 보도자료 던졌다"…익명 게시판 떠들썩
대외 소통 신중해졌지만
'알잘딱깔센' 업무스타일에 안팎에서 볼멘소리
최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대외 행보에 '톤다운'이 감지되고 있다. 거침없는 화법과 강경한 태도로 알려졌던 이 원장이 최근 들어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인다는 평가다. 추석 전 은행장들과 진행한 간담회 직후, 가계부채 관리에 관해 혼란스러운 발언을 한 데 대해 직접 "죄송하다"고 말하거나, 백브리핑 자리에 메모장을 들고 등장하는 등 전에 없던 신중한 태도로 임하고 있다. 사과 사흘 후 한국경제인협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의 부당대출을 어떻게 보냐는 질문이 나오자 "이 자리에서 얘기할 내용은 아니다"라며 자제했다.
외부적으로는 발언을 자제하고 메시지 관리에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금감원 내부에서는 수장의 업무 스타일이 여전히 강경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를 보면, 한 금감원 직원은 직원 전용 게시판에 "어제 11층에선 무슨 일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에서 "보도자료를 집어 던졌다. 특정 임원을 크게 깼다. 오후에 퇴청했다. 등등 얘기가 도는데요"라고 적었다.
금감원 11층은 원장실이 있는 층이다. 알려진 바로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했던 지난 11일, 관련 부서가 금융상황 점검회의 개최 후 작성한 보도참고자료를 이 원장이 반려시켰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다른 금감원 직원도 '금융감독이란 무엇일까'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온 부서를 떠들썩하게 한 보도자료 투척사건"이라고 했다. 그는 "화부터 내지 말고 뭘 원하는지 논리적으로 말해라. 온갖 정부·여당에서 금리 낮추라고 압박한 끝에 얻은 피벗(금리인하)이라 대서특필하고 싶으면 그냥 그렇게 말하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기는 했으나 가계부채가 더 늘어나면 안되니 금감원이 관리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더 풍기라고 요구했다는 해석이다. 작성자는 이에 "직원이 원장만큼 금리 인하에 민감하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라며 "25bp(1bp=0.01%포인트) 인하로 건전한 신용질서나 공정한 금융거래 관행이 위협받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해당 참고자료에 대해서는 가계부채 관리에 대한 금감원의 입장이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자료에는 "기존 가계대출에 대해서도 기준금리 인하 효과가 반영될 수 있도록 예대금리 추이를 면밀히 모니터링해달라"고 쓰여있다. 기존 대출자들에게는 변동금리 적용 시에 대출금리를 완화해주고, 신규 대출에 대해서는 억제하도록 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또 한 번 금융권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취약 차주를 보호하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신규 대출(가계부채)이 늘어날 것을 걱정하면서 기존 가계대출에 대해서는 금리를 낮추라는 게 차주들에 대해 형평성이 있는 주문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언급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도 "그간 이 원장이 해왔던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라는 신조어)'식의 접근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의 행보가 때로는 정치적 성향을 띤다는 지적도 나왔다. 블라인드 게시글 작성자는 이 원장이 상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도 코스피가 오르면 정권의 지지율도 오르기 때문이라며 "코스피가 오르는 것과 건전한 신용질서, 공정한 금융거래관행이 대관절 무슨 상관이냐"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금감원의 다른 중간관리자급 직원은 "내부에서는 이 원장의 리더십을 두고 '공포정치'라고 부른다"며 "저연차 직원들도 처음에는 힘이 센 원장이 와서 좋다고 했다가, 시간외수당도 못 받고 일하면서 사기가 많이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금감원 안팎으로는 임기가 2년을 훌쩍 넘은 시점인데도 이 원장이 여전히 '검사'식 업무 스타일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금감원의 감독대상인 한 금융사 관계자는 "금감원의 징계가 금융사에 통보되기도 전에 언론에 보도되는 사례 같은 게 너무 많아졌다"며 "먼저 여론을 조성하면서 일을 추진하는 게 전형적인 검사의 업무처리 방식이라더라"고 말했다.
금감원이 최근 고려아연과 영풍에 대해 회계심사에 들어간 것에 대해서도 한 금감원 관계자는 "회계 위반 혐의를 인지했어야 착수하는 건데, 지금은 너무 섣부른 시점 아닌가 싶다"며 "뜬금없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고 설명했다. 뭔가 잘못한 게 있다는 인식에 따라 검찰이 압수수색에 착수하는 것처럼 회계심사부터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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