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성폭력·스토킹·학대…
가해자는 변호인 조력 받는데
피해자는 형사소송 절차서 소외
성폭력, 장애인 학대 등 범죄의 피해자를 돕는 피해자 국선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대상 범죄가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형사절차에서 범죄피해자의 소외를 막고 법률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서다.
범죄피해자는 형사소송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재판 절차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범죄 피해자가 받는 인권 침해가 늘고, 시청역 교통사고나 육군 훈련병 사망 사건처럼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 상황에서 피해자의 보호 범위를 확대하고 지원을 강화하는 등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성폭력·아동 학대·장애인 학대·인신매매·스토킹 범죄피해자에 한해 무상으로 법률적 조력을 제공한다. 수사부터 재판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피고인 측 변호인과 맞서 피해자를 법률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관리하는 전담 변호사와 개인 사건과 병행하는 비전담 변호사로 나뉜다. 2013년 도입된 피해자 국선전담변호사는 전국에서 45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2012년 도입된 비전담 국선변호사는 약 600명 정도가 활동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3년 9월까지 총 26만 251건을 지원했다.
법무부도 피해자 국선 변호 대상 확대에 공감해 지난해 12월 피해자 국선변호사 지원 범위에 살인·강도·조직폭력 등 주요 강력범죄를 포함하는 내용의 특정강력범죄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지만 제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된 상태다.
성폭력전담 형사합의부 재판장을 맡았던 한 고법판사는 “특정 범죄에만 제공하기보다 피해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검사의 심사를 통해 피해자 국선변호사를 지정해 줄 필요가 있다”며 “예컨대 살인죄의 경우 피해자의 유가족이 개인적으로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으면 국선변호사를 신청할 수조차 없고, 신체 상해나 폭력 범죄 등 피해자의 경우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강상택(36·변호사시험 6회) 피해자 국선전담변호사도 “성범죄는 경미한 사건이라도 2차 피해 발생 가능성이 있어 국선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듯이 특정강력범죄 역시 2차 피해 가능성이 있는 만큼 국가가 여건이 된다면 지원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 국선 사건만 담당하는 변호사는 총 45명(2024년 7월 16일 기준)으로 서울과 수도권에만 22명이 배치됐다. 포항, 진주, 서산, 목포 등 4개 도시에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이사장 이종엽)에 따르면, 올해 2월 채용이 10곳(서울동부, 부천, 여주, 서산, 김천, 포항, 울산, 진주, 목포, 제주)에서 진행됐지만 6곳(서산, 김천, 포항, 울산, 진주, 목포)에 채용된 인원은 없었다. 이에 따라 공단은 지난 15일 추가 충원을 위해 포항, 진주, 서산, 목포를 포함해 서울중앙, 서울서부, 대전, 울산, 평택 등 지역에 채용 공고를 냈다.
검찰의 피해자 지원도 실효성이 부족한 실정이다. ‘피해자 전담검사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들은 강력범죄 발생 시 유관기관 협의와 피해자 지원 업무 등 역할을 주로 하고, 재판에서 실질적으로 피해자 조력을 맡는 사람은 ‘공판 검사’다. 공판 검사는 피해자 진술권 보호를 위해 재판부에 ‘피해자 의견 진술’을 신청할 수 있다.
공판검사는 피해자가 입은 심리적·신체적·사회관계적·경제적 피해 등 세부 사항을 파악하고 보복 위협을 비롯한 ‘2차 피해’ 등과 관련한 진술을 돕는다. 그러나 2023년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공판 검사 1명당 배정된 재판부가 약 1.68개인 데다가 구공판 건수도 증가하고 있어 공판 검사가 사건의 피해자를 세세하게 살펴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법무부는 범죄피해자 보호·지원 제도를 통해 ‘피해 입은 것도 억울한데 변호사도 구할 수 없어 난감해요!’라는 설명 아래 피해자 국선변호사 지원을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법조에서는 국선변호사 선발을 위해선 처우와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 국선전담변호사의 경우엔 구조상 타지역 관할 사건의 피해자에게 조력을 제공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신진희(54·사법연수원 40기) 피해자 국선전담변호사는 “지방 소재 국선전담변호사에 지원하기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주거 문제”라며 “연고가 없는 지역에 근무하게 되면 주거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전세자금 대출이나 관사가 제공되면 지원자가 늘 수 있다”고 말했다.
처우 개선도 시급하다. 피해자 국선전담변호사의 경우 지난 10년간 월 500만 원대로 급여가 동결됐다. 2013년에는 월 15건 사건 지정에 월 급여 530만원 내외였던 데 비해 올해 채용공고에서는 월 16건 내외의 사건 지정에 월 500만 원으로 오히려 감소하기까지 했다.
비전담 국선변호사도 마찬가지다. 업무를 수행해도 보수 청구 과정에서 업무별로 소명 자료를 내야 해 번거로울 뿐 아니라 시간도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피의자 국선 변호의 경우엔 법원에서 보수가 지급되고 증액이 필요한 경우에만 서류를 내면 되는데, 피해자 국선 변호는 조사 동석 시에 수사관 확인서를, 피해자 상담 시 피해자 서명이 담긴 확인서를, 교통비 청구 시에는 인터넷에서 거리 증빙서를 모두 첨부해야 해 건당 소요되는 시간이 과하다”고 토로했다.
이밖에 절차 개선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피고인과 달리 수사기관에서 관련 정보를 통지해주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 변호사들은 사건 번호를 파악하기 위해 경찰 단계에서는 경찰에, 송치 후엔 검찰에 물어보며 일일이 추적해야 한다.
이진영, 박수연 법률신문 기자
※이 기사는 법률신문에서 제공받은 콘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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