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해결 의지' 천명한 세송이물망초 미착용
기시다는 '푸른 리본' 달고 나와 의지 보여줘
대통령실 "한번 달면 계속 달아야 하는 부담"
인권단체 "당연히 할 말도 못하는 직무 유기"
4년 반 만에 한·일·중 정상회의가 개최되며 역내 협력 모멘텀이 마련됐지만, 우리 납북자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세송이물망초' 배지마저 착용하지 않으면서, 북한과 밀착해온 중국 앞에서 해결 의지를 보여줄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반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푸른 리본'을 달고 나와 자국민에 대한 정부의 보호 의지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28일 외교 당국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6~27일 서울에서 진행된 한·일·중 정상회의에서 '세송이물망초' 배지를 착용하지 않았다. 올해 3월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송환을 기원하며 정부가 제작한 것이다.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물망초의 꽃말에 담긴 의미를 차용했다. 윤 대통령은 당시 국무회의에서 "저를 포함한 모든 국무위원이 '아주 특별한 배지'를 가슴에 달았다"며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전원을 가족과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겼다"고 직접 소개했다.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배지 착용'을 놓고 관계 부처 간 의견이 엇갈린 것으로 파악됐다. 통일부에선 '대통령이 배지를 달고 정상회의 일정을 치러야 한다'는 건의가 올라갔지만, 대통령실 선에서 반대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세송이물망초' 배지를 착용하는 게 의미가 있겠다는 의견이 올라갔지만, 용산에서 반대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중국을 고려해도) 부담이 적고 배지를 다는 것만으로도 해결 의지를 표명하기 좋은 기회였는데 아쉬운 지점"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는 '가치 외교'를 기치로 내걸고 국제사회에서 인권 등 보편적 가치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대북 정책에선 '북한 인권'을 축으로 삼았고,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문제에 대한 정부 차원의 관심이 커진 것도 이런 맥락이 작용했다.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선 3국 정상이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의 의지'를 확인했다. 이후 통일부는 장관 직속으로 '납북자 대책팀'을 신설했고, 같은 과제를 안고 있는 일본과 협력을 이어 왔다.
이번 한·일·중 정상회의 공동선언에 일본과 마찬가지로 우리 납북자 문제도 명시될 거란 기대감이 커졌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배지를 착용하지 않고 관련 사안을 언급하지 못한 데 더해 내용적 측면에서도 '후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8~2019년 각각 일본 도쿄와 중국 청두에서 열린 정상회의를 계기로 발표된 공동선언에는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자' 문제가 담겼다. 한국과 중국의 정상이 문제 해결을 희망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명시한 것이다. 정작 우리 국민들에 대한 언급은 빠져 있었다. 이번에는 북한이라는 가해 주체도 명시하지 않고 '납치자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각각 재강조했다'고 쓰는 데 그쳤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시다 총리는 해외 일정마다 항상 달지만, 우리도 한 번 달고 각인이 되면 매번 달아야 한다는 부담이 생긴다"며 "우리 외교에선 없던 원칙이라 갑자기 달기에는 어색한 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일본처럼 북한과 대외 관계가 아닌) 남북관계이기 때문에 글로벌 외교 때마다 착용하는 건 어색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법률분석관은 "북한에 잡혀 있는 우리 국민의 송환을 촉구하는 건 국가의 기본적 책무"라고 꼬집었다. 이어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가족들도 북한을 상대로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며 "이들의 가슴을 찢어놓는 건 당연히 할 말을 하는 최소한의 일관된 외교적 노력과 결기조차 보이지 않는 정부의 직무 유기"라고 비판했다.
日 정치인들 가슴 위에 달린 '푸른 리본'
기시다 총리는 이번에도 정장 옷깃 위에 '푸른 리본' 배지를 달고 나타났다. 그는 지난해 방한 때도 이 배지를 달고 국립 서울현충원을 찾아 참배했다.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를 상징하는 이 배지는 시민단체가 만들었다. 2002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에게 일본인 납치 사실을 시인한 게 계기였다. 파란색은 납치 피해자와 가족, 일본 국민들이 일본과 북한 사이를 잇는 푸른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며 '재회'를 기다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본인 납치자 문제가 수면 위로 떠 오른 계기는 '요코타 메구미' 사건이다. 1977년 11월 당시 13세였던 메구미 양은 하굣길에 사라졌다. 20년이 지난 1997년 탈북자에 의해 그를 비롯한 일본인 다수가 북한에 억류돼 있다는 사실이 처음 드러났다. 북한은 그가 1993년 정신병으로 입원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했지만, 피해자 증언에 따르면 1994년에도 생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도 생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송환을 촉구 중이며 그 대표적 예가 '푸른 리본'이다.
대일 소식통은 "일본에선 이 배지를 '블루 리본'이라 부르는데, 정치인이 이를 착용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납치자 문제를 잊지 않고 있다'는 각오를 알리는 동시에 '북한에 억류된 일본인의 석방을 촉구한다'는 뜻"이라며 "총리뿐만 아니라 내각 각료 전원이 공식 행사에서 이 배지를 착용하며, 이런 원칙은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아베 신조 전 총리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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