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폴란드 등 동유럽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1차적인 원인으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방위산업 수출과 경제교류 확대가 꼽힌다. 하지만 동남아시아 지역에 편중된 국내 은행의 해외 실적 역시 배경 중 하나로 지목된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의 해외법인 당기순이익 중 동남아시아 지역 비중은 약 50~60% 수준에 이른다. 신한은행의 경우 지난해 전체 해외법인 중 동남아시아 3개국 법인(베트남·캄보디아·인도네시아)의 비중은 51.7%였다. 5년 전인 2019년(49.3%) 대비로도 상승한 수치다.
우리은행도 같은 기간 동남아시아 5개국(인도네시아·미얀마·필리핀·베트남·캄보디아) 법인의 지배주주 기준 순이익 비중이 전체 해외법인의 64.6%에 이르렀다. 2019년(67.6%)보다는 3.0%포인트 하락했지만, 전체 해외 순이익의 3분의 2를 동남아에서 거두는 구조는 여전한 셈이다.
하나은행도 인도네시아 'PT Bank KEB Hana'의 지난해 순이익이 약 381억원으로 전체 해외법인 실적의 34%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외환은행과 합병한 하나은행은 타 은행과 비교하면 비교적 북미와 남미 진출을 활발히 하며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러시아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거뒀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최근 러시아에 진출한 글로벌 은행들의 영업 중단과 하나은행 러시아 법인의 영업력 강화 등으로 외환거래가 집중되면서 외국환 수수료 이익이 많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시중은행 해외 진출의 동남아 편중 현상은 은행 점포·자산에서도 드러난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발표한 2022년 말 기준 국내은행의 해외 점포는 총 40개국 207개소에 이르는데, 이 중 동남아(8개국) 비중은 33.8%로 가장 많았다. 중국·홍콩·일본(17.9%), 기타 아시아(17.4%), 미주(14.0%), 유럽(12.6%), 기타지역(4.3%)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자산규모도 마찬가지다. 국내은행 해외점포 자산을 보면 동남아 지역은 539억7000만달러(26.6%)로 1위를 기록했다. 이어선 미국(326억2000만달러), 중국(313억6000만달러), 홍콩(258억6000만달러), 영국(201억7000만달러) 순이었다. 경제 규모의 차이에도 동남아 지역으로의 자산 편중이 일어나고 있다.
국내은행이 그동안 동남아 시장에 집중한 것은 해당 지역 금융산업의 영세성, 상대적으로 덜한 경쟁도 등이 꼽힌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미주·유럽지역 등은 아무래도 여러모로 발전해 있는 글로벌 은행의 영향이 막대한 만큼 (제) 자리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면서 "동남아 지역은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금융 인프라가 크게 낙후돼 있어 국내 은행이 진출하기에 무엇보다 편리한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특정 지역으로의 편중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박해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낸 보고서를 통해 “해외에 진출한 국내 금융회사는 동일 지역, 동일 고객, 동일 업무의 성향이 강하다“며 ”현지에 진출한 국내금융 회사 간 출혈경쟁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인 금융당국도 지난해부터 기존 동남아는 물론, 중앙아시아·동유럽으로도 보폭을 옮길 것을 독려하고 있다. 지난해엔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을 찾아 K-금융 세일즈에 나선 바 있다. 당시엔 BNK금융지주의 자회사인 BNK캐피탈이 키르기스의 수도 비슈케크에 해외법인을 설립한 바 있다.
또 김주현 금융위원장 역시 지난 24일부터 5대 시중은행, 기업은행과 함께 동유럽 폴란드를 방문해 우리 금융사의 현지 진출 등을 논의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동유럽 일대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확대된 가운데, 유럽 내 생산거점이자 물류기지로서의 헝가리·폴란드 등의 위상이 커진 까닭이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부애리 기자 aeri34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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