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은 대놓고 드러내지 못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환자를 보면서 감동 받았던 부분이나 그들로부터 배웠던 부분을 글을 통해 문학적으로 풀어보려고 했지요."
지난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령 사옥에서 열린 '보령의사수필문학상' 시상식에서 만난 신제일병원의 박관석 원장은 수필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박 원장은 환자들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나 그들로부터 배웠던 점을 수필로 써냈다. 그는 올해 수필문학상에서 대상의 주인공이 됐다.
박 원장은 2001년부터 충남 보령시에서 환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환자들을 진료하며 그들의 삶을 마주했다. 시골 마을에서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때론 그들의 삶에서 감동을 느꼈고, 그들의 행동에서 귀중한 교훈을 얻기도 했다. 글로 풀어내 널리 알릴 가치가 충분했지만, 의사로서 환자들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야 했다. 그래서 환자들을 만나며 느낀 희로애락을 수필의 형태를 빌려 풀어냈다. 이번 문학상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 '문득 그 향기가 그리운 날엔'에도 한 환자를 맞았던 날의 기억을 향기라는 소재로 담아냈다.
박 원장이 수필 문학의 세계에 빠져든 계기는 다른 의사들의 작품을 접하면서였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당시 보령제약의 영업사원이 의약품 팸플릿과 함께 두고 간 의사수필문학상 작품집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별생각 없이 집어 든 작품집을 읽다 보니 어느새 작품에 담긴 의사들이 이야기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그해 겨울 처음으로 수필을 써 출품했고, 동상을 수상했다. 이후부터 본격적인 수필의 매력에 매료돼 의사이자 수필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가 지금까지 써낸 수필 작품만 50여편에 달한다.
수필을 쓰면서 달라진 점도 있다. 환자를 '마음'으로 대하게 된 것이다. 의사로서 환자를 대하는 표면적인 관계를 넘어,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진정으로 도움을 주려 노력하는 '사람을 대하는 의사'가 됐다. 박 원장은 "의사로서 환자분들의 병을 진단하기도 하지만, 환자들이 어떻게 지내왔는지, 무엇이 그들을 더 아프게 했는지 살펴보고 위로해주게 됐다"면서 "좋은 의사가 돼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앞으로도 수필 집필을 이어갈 예정이다. 의사이자 수필가로 활동하면서 환자들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의사가 되는 게 그의 목표다. 그는 "과거에는 병을 잘 고치고 주변으로부터 명망을 얻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환자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살아가는 힘을 얻게 해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며 "환자의 마음이 치유되는 게 얼마나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인가를 생각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대상 수상자인 박 원장에게는 이날 상패와 금메달이 수여됐다. 박 원장은 이번 대상 수상으로 정식 등단하게 된다. 그의 작품이 수필 전문 잡지인 '에세이문학'에 실리게 되면서다.
한편, 올해로 19회를 맞는 '보령의사수필문학상'은 의사들이 직접 쓴 수필문학을 통해 생명 존중과 사랑의 의미를 알리기 위해 보령에서 2005년 처음 제정한 상이다. 보령의사수필문학상은 의료인의 수필 등단 무대로 역할을 하며 지난 19년간 160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번 시상식에서는 대상을 받은 박 원장의 작품 이외에도 금상에 ▲첩첩한 땀(누가광명의원 조석현), 은상에 ▲서른 살에 죽다(중앙병역판정검사소 이진환) ▲폭죽 할매(양산병원 주새한), 동상에는 ▲남한 사람(경북대학교병원 장성만) ▲저녁노을(포항여성병원 배철성) ▲경계를 넘어(국립중앙의료원 조지현) ▲써니와 쑤언(새서울의원 김철환)▲ 그냥 계속 탱고를 추어요(남양주백병원 김용래)등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이명환 기자 lifehw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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