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미국 일상 속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저는 모든 관심을 좋아해요. 여러분." 지난주 치러진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4차 토론회에서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가 자신에게 공격을 쏟아붓는 경쟁자들에게 건넨 한 마디다.
최근 지지율 급상승에 힘입어 ‘트럼프 대항마’로 부상한 헤일리 전 대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없이 진행된 이번 토론회에서 말 그대로 집중포화를 받았다. 기업인 비벡 라마스와미는 "월가에 매수된 정치인"이라고 그를 비꼬았고, 트럼프 대항마 타이틀을 빼앗긴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기부자들에게 굴복하게 될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최근 월가 큰 손들로부터 대규모 정치자금을 받은 것 등을 문제로 삼은 공격이다. 물론 이에 대해 헤일리 전 대사는 ‘후원 못 받은 질투’, ‘답변할 가치가 없다’며 일축했지만 말이다.
50대 초반의 헤일리 전 대사는 미 대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반(反) 트럼프’ 세력들의 적극적인 러브콜을 받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침범할 수 없었던 영역인 공화당 온건파와 무당파는 물론, 조 바이든 대통령을 선호하지 않는 민주당 지지자들까지 그를 ‘대안’으로 주목하는 모습이다. 특히 월가의 금융 거물들이 잇달아 지지를 선언하며 막강한 자금력과 조직까지 확보한 다크호스가 됐다.
헤일리 전 대사에 대한 지지를 밝힌 월가 거물들로는 공화당 ‘큰손’인 찰스 코크 코크인더스트리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정치단체 ‘번영을 위한 미국인들(AFP)’, ‘월가의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 등이 꼽힌다. 게리 콘 전 골드만삭스 회장이 주최한 선거자금 모금 만찬에는 내로라하는 월가 인사들이 대거 얼굴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소셜미디어 ‘링크드인’의 공동 창업자 리드 호프먼이 25만달러를 기부하는 등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공화당 소속 헤일리 전 대사를 앞세운 반트럼프 전선이 확인된다.
경제계로선 자칫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시 불확실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다. 더욱이 헤일리 전 대사는 규제 완화, 부자 감세 등 보수주의 시장자유주의 지지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간단히 말해 월가의 입맛에도 맞는 인물인 셈이다. 억만장자 에릭 레빈은 헤일리 전 대사가 "탄탄한 외교정책, 미국에 대한 긍정적 견해, 낙태권과 관련해 합리적 입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이먼 회장은 헤일리 전 대사와의 통화를 통해 그의 지성, 합리성, 개방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헤일리 전 대사는 연령(50대), 성(여성), 인종(인도계), 종교(시크교) 등의 측면에서도 다른 주요 대권주자들과 차별화되는 확장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월가의 자금력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대권까지 갈 길이 멀다. 헤일리 전 대사의 지지율(WSJ 설문조사 기준 15%)이 급격히 높아졌다곤 하나, 여전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59%)과 격차가 크다. USA투데이는 이른바 ‘헤일리 모멘트’로 불리는 이러한 상황을 주목하면서도 ‘트럼프 vs 헤일리’ 구도에서 헤일리 전 대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외계인들이 인류의 결점을 이해하기 위해 트럼프 전 대통령을 납치하거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도하차 또는 투옥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만큼 쉽지 않은 승부란 뜻이다.
월가의 ‘달링’이 된 헤일리 전 대사가 단지 몇달간의 돌풍에 그친 디샌티스 주지사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을까. 첫 승부처는 내년 1월 공화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첫 경선 아이오와 코커스가 될 것이다.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미국 대선이 11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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