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지키면 정의가 지켜질까요?"
뮤지컬 '데스노트'에서 주인공 야가미 라이토의 첫 대사다. 데스노트의 첫 장면은 어느 고등학교 수업 시간. 선생님이 법을 지켜야 정의도 지킬 수 있다고 가르치는데 라이토는 반문을 제기한다.
이어지는 첫 넘버(뮤지컬 공연에서 부르는 노래)의 제목은 '정의는 어디에?'다. 노래하는 라이토가 정의는 쓸데없는 이론이고 의미 없는 논쟁이라며 도대체 정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데스노트의 시작은 강렬하고 묵직하다. 우선 법과 정의라는 소재가 쇼의 성격이 강한 뮤지컬에서는 보기 드물어 호기심을 유발한다. 법과 정의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논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법과 정의라는 주제가 뮤지컬에 어울릴까라는 의구심은 꽤 효과적으로 해소된다. 데스노트가 여러 부분에서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의 '파우스트'를 떠올리게 하는 장치를 마련해놓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괴테가 약 60년에 걸쳐 완성했고, 또 사망하기 불과 몇 개월 전 완성한 파우스트는 선과 악, 삶과 구원 등 묵직한 주제를 다룬 희곡이다.
파우스트는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거래를 하는 인간의 얘기를 다룬 작품으로 유명하다. 데스노트에서는 '사신(死神)의 눈'을 갖기 위해 수명의 절반을 내놓는 인간과 사신 사이의 거래가 이뤄진다.
원작 만화가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영화도 시리즈로 제작돼 줄거리는 잘 알려져 있다. 라이토가 누구든 이름이 적히면 죽음을 맞게 되는 사신의 노트 '데스노트'를 우연히 주우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라이토는 데스노트의 비밀을 안 뒤 세상의 정의를 실현하겠다며 범죄자들의 이름을 데스노트에 적어 소탕한다. 여론은 반으로 나뉜다. 범죄자를 소탕하는 라이토를 정의의 사도인 양, 구세주라는 뜻의 '키라'라 칭하며 추앙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비록 범죄자일지라도 이들을 죽인 행위는 살인이라며 라이토는 또 다른 범죄자일 뿐이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등장한다. 경찰은 살인은 살인일 뿐이라며 라이토에 대한 수사망을 좁혀간다.
주인공 라이토를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에 두고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도 파우스트의 주인공 파우스트 박사와 닮아있다.
데스노트 속 사신 류크의 역할은 파우스트의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비슷하다. 류크는 심심해서 자신의 데스노트를 땅에 떨어뜨리고 라이토가 이를 주우면서 사건이 벌어진다.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신에게 장난처럼 내기를 건다. 신이 파우스트는 자신의 종이라고 하자 메피스토펠레스가 자신의 길로 이끌어낼 수 있을지를 두고 내기를 제안한다.
법과 정의의 주제 탓에 자칫 무겁게 흐를 수 있는 극의 흐름은 여주인공인 아마네 미사의 이야기로 균형을 맞춘다. 미사는 아이돌 가수로 뮤지컬 본연의 화려한 쇼를 보여주는 역할을 맡는다. 다만 극이 라이토와 천재 수사관 L의 대립 구도에 초점을 맞춰 전개되면서 도구적인 역할에 그치는듯한 인상도 준다.
지금 뜨는 뉴스
데스노트의 무대는 바닥과 배경, 천장 3면을 모두 1380장의 발광다이오드(LED) 패널로 채웠다. LED 패널은 상상의 공간인 사신들의 세계를 효과적으로 구현한다. 다만 교실, 길거리 등 현실의 세계를 구현하는 장면에서는 어색한 면이 없지 않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