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변선진 기자] 정부가 앞으로 5년간 자살률을 지금보다 30% 이상 줄이겠다는 자살예방 계획안을 13일 내놨다. 산화형 착화제가 사용된 번개탄을 인체 유해성이 낮은 친환경 번개탄으로 대체하고, 신종 자살수단에 대한 관리체계가 강화된다. 자살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교량, 난간 등 위험 장소엔 울타리를 설치한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공청회를 개최하고 이런 내용을 담은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2023~2027년) 잠정안을 공개했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코로나19 장기화에도 불구하고 2019년 26.9명에서 2021년 26.0명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2003년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2027년까지 이런 불명예에서 벗어나겠다는 각오다. 이두리 복지부 자살예방정책과장은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재난 시기에 사회적 긴장·국민적 단합에 따라 자살률이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2~3년 후 자살률 반등 가능성이 있어 촘촘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자살은 1인당 4억900만원의 사회경제적 비용을 초래하는데, 2021년 기준으로 전체 손실의 규모는 5조4000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번개탄 관리 강화, 교량·난간에 울타리 설치”
5차 기본계획 잠정안에 따르면 번개탄 등 사회 자살 위험요인을 줄이기 위해 자살위해물건의 관리가 촘촘해진다. 예컨대 산화형 착화제가 사용된 번개탄은 생산을 중단하고 친환경 번개탄으로 대체하도록 하는 것이다. 수면제 등 신종 자살수단에 대한 관리체계도 강화된다. 이런 물질을 온라인으로 유통·판매할 수 없도록 모니터링도 시행된다.
자살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교량, 난간 등 위험 장소에 울타리를 설치해 자살사고 가능성을 차단한다. 또 자살 다발장소를 중심으로 지구대의 순찰선을 지정하고, 생명존중협력담당관이 지속적으로 순찰해 고위험장소를 재정비한다. 자살 고위험군을 선별해 치료와 사후관리가 가능한 정신건강의학과, 자살예방센터 등 전문기관 연계도 활성화한다. 자살시도자의 정보를 자살예방센터 등과 의무 연계해 사각지대를 해소한다.
현재 10년 주기로 실시되는 정신건강검진을 2년 주기로 단축하고, 대상이 되는 정신질환을 우울증뿐만 아니라 조울증 등 다른 정신 질환도 포함한다. 연령대별, 성별, 군인, 근로자, 경제·정신건강 위기군 등 대상자 특성에 맞는 자살예방안도 수립된다. 자살사망자의 심리부검, 특성 분석을 통해 더 나은 정책 수립을 위한 근거도 마련한다.
“5년 주기 이상의 중장기 대책 마련 필요”
이날 공청회에서 전문가들은 당장의 자살률을 낮추기 위한 5년 주기의 단기 계획에만 치중하다 보면 궁극적으로 사회가 지향해야 할 중장기 대책이 간과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살기 좋은 사회’에 대한 고민이 함께 필요하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이날 공청회를 통해 제기된 의견을 관계부처와 검토해 보완하고 국무총리 주재 자살예방정책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기본계획을 확정·발표한다.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은 “5년 계획에 자살 위험 도구를 차단하고 자살 고위험군을 줄이는 방안을 우선순위에 두는 건 맞지만, 사후 대책에 치우친 나머지 중장기적인 문화, 관습 등 개선 정책에는 무관심해질 수 있다”며 “세계보건기구(WHO)도 자살 위험요인에만 치중하면 자살 보호요인 증진엔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고 말했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금껏 5년 계획 목표로 보면 2004년 1차 계획부터 모두 달성하지 못했다”며 “2027년까지 자살률 30% 줄이겠다는 추상적인 목표보다 구체적인 근거가 제시된 목표를 세우는 게 더 맞다고 본다”며 “시간이 흐를수록 자살률이 계속 줄어들 건가 하는 선형적인 고민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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