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학자 박수밀 한양대 연구교수가 말하는 '필사의 힘'
책의 내용을 손으로 따라 쓰는 것을 필사(筆寫)라고 부른다. 붓으로 베껴 쓴다는 뜻이다. 키보드를 두드리기만 하면 수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스마트폰을 터치하면 친구와 대화를 즐길 수 있는 시대에 굳이 힘들여가며 손으로 글씨를 쓸 필요가 있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고전학자 박수밀 한양대 연구교수는 "손으로 직접 쓰는 필사가 주는 이익은 절대 작지 않다"면서 "조금 더 느린 대신, 머리가 좋아지고 생각하는 힘을 키우며 차분한 정서를 갖는 사람이 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실학의 인문정신과 글쓰기, 고전과 동아시아교류사 등을 연구하고 있다. 2015년에는 리더에게 필요한 좋은 구절,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실은 ‘고전필사-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옛사람의 지혜71’을 펴내기도 했다.
손으로 직접 글씨를 쓰면 뇌의 발달에 큰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들은 많다. 글씨를 쓰면서 배우면 읽기도 빨리 배울 뿐 아니라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정보를 얻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것이다. 캐나다 오타와 대학 재활치료학과의 카차 페더 교수에 따르면 쓰지 않고 암기하는 것에 비해 펜으로 노트 필기할 때 공부한 것을 더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뇌의 순환이 손으로 직접 글을 쓸 때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손으로 글씨를 쓰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가 있다"고 말한다. 키보드를 두드리게 되면 쓰는 속도가 빨라 생각할 시간이 없다. 하지만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눌러쓰는 일에는 물리적인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덕분에 손으로 쓰는 동안 생각하는 시간이 생긴다. 사각사각 연필 소리를 들으며 글씨를 옮기는 가운데 마음이 차분해지고 집중력이 높아진다. 손으로 직접 쓰면 지우기 어렵기 때문에 한번 더 고민해가며 정성스럽게 쓰는 과정에서 생각하는 힘이 길러진다. 박 교수는 "손 글씨 안에는 따뜻한 감성과 풍성한 학습 효과가 담겨 있다"면서 "그냥 손으로 옮겨 쓸 때보다 입으로 소리 내면서 쓰면 더더욱 효과가 좋다"고 말한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아할까.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을 오랜 기간 연구해온 박 교수는 대문장가인 연암의 글 짓는 법을 추천한다. 박 교수는 우선 ‘진심(眞心)의 글을 쓰라’고 말한다. 내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쏟아내면 평범한 말도 저절로 새롭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아프고 가렵게 하라’이다. 연암의 둘째 아들 박종채가 지은 ‘과정록’에서 연암은 "아프게 하지도 가렵게 하지도 못하고, 구절마다 범범하고 우유부단하기만 하다면 이런 글을 대체 얻다 쓰겠는가"라고 했다. 박 교수는 "연암의 글은 독자를 아프게 하고, 부끄럽게 하고, 화나게 하고, 깨우치게 하고, 움직이게 했다"고 말했다.
세번째는 현실에 집중하라는 ‘지금 눈앞을 담아내라’, 네번째는 더 생동감있고 진실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흠과 결점을 보여 주어라’이다. 박 교수는 작년 11월 펴낸 <연암 산문의 멋>에서 "연암은 비유법에 뛰어났으며 자신의 사상과 성찰을 산문이라는 형식에 담는 데 탁월한 시대의 지성"이라면서 "연암은 조선 시대 최고의 작가이자 고전 지성사에서 중요도로 선두를 다투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이명환 기자 lifehw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