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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이겨냅시다]"출근길 꽉 찬 지하철 무서워"…'집단 트라우마'에 빠진 대한민국

시계아이콘읽는 시간2분 3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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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명 사망한 참사, 직접 겪은 일처럼 느껴져
참담한 현장사진 여과 없이 접한 후 괴로움 호소하기도
간접경험도 심리적 충격 커 …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일상생활 저해할 정도로 지속될땐 정신과 진료 필요

편집자주대규모 희생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 앞에서 유가족과 부상자는 물론 구조인력, 현장에 있던 목격자, 그리고 그 상황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지켜본 국민들까지 많은 사람이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에서 발생한 대형 참사인 만큼 모두가 불안, 공포, 죄책감 등에서 벗어나 마음에 안정을 찾기까진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경제는 우리 사회가 이 같은 아픔을 어떻게 보듬고 함께 극복해 나가야 할지 3회에 걸쳐 집중적으로 들여다본다.

[함께 이겨냅시다]"출근길 꽉 찬 지하철 무서워"…'집단 트라우마'에 빠진 대한민국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사망자를 위한 합동분향소를 찾은 한 시민이 헌화를 마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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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양동에서 논현동까지 지하철 9호선을 이용해 출근하는 최지현(43) 씨는 지난 월요일부터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서고 있다. 항상 승객이 꽉 차 한두 대 보내고 나서야 겨우 탈 수 있는 급행열차 대신, 그나마 덜 붐비는 일반열차를 타기 위해서다. 최 씨는 "그동안에도 사람들 사이에 꽉 끼여 출근하다 보면 '잘못하면 사고 나겠다' 생각은 들었는데, 이태원 참사 이후엔 '아, 이러다 죽는 거구나' 하는 공포감에 시달린다"고 호소했다.


#"우리나라, 서울 한복판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억장이 무너진다. 젊은이들이 왜 이렇게 희생돼야 하는지, 자식 키우는 부모로서 남 일 같지 않아서 들렀다." 1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은 박정애(46) 씨는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박 씨는 "지난 토요일 밤 핼러윈 파티 간다고 외출한 22살 딸이 연락이 안 돼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면서 "다행히 딸은 홍대 인근에 있었지만, 지금도 하루에 몇 번씩 TV에서 본 사고 모습들이 생각나 마음이 힘들다"고 했다.


지금까지 156명의 사망자를 낸 이태원 참사가 상당 기간 우리 국민들의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사고 현장에 있었던 부상자나 가족을 잃은 유족 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 가운데도 사고 이후 불안감이나 우울감을 느끼고, 공황 상태에 빠지거나 분노를 참기 어렵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뉴스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사고를 간접 경험한 이들은 영상이나 사진 속 모습이 자꾸 떠올라 괴로워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태원 참사가 전 국민에게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을 남길 수 있는 만큼 이같은 감정을 애써 참거나 숨기려 하지 말고, 필요할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SNS 타고 공유된 사회재난…전 국민 간접경험

재난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도 재난과 관련한 충격적인 소식을 듣거나 현장 사진 등을 접하면서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 더욱이 이번 이태원 참사는 국내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대규모 압사 사고인데다, SNS를 통해 현장 모습이 고스란히 대중에게 전해진 탓에 사회 전체가 집단 트라우마를 겪을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지난달 29일 밤 사고 직후부터 온라인과 SNS 등에는 현장 목격자들이 촬영한 영상이나 사진들이 실시간으로 쏟아졌다. 수십 명의 구급요원과 시민들이 다급하게 심폐소생술(CPR)을 하는 영상이나, 길가에 시신들이 눕혀져 있는 충격적인 사진이 모자이크 처리도 안된 채 전파됐다. 이 때문에 이태원 근처에 가지도 않았고, 가까운 주변인 중에 사상자가 나온 것도 아닌데 마치 사고를 직접 겪은 일처럼 느끼게 됐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사고 직후 성명을 통해 "여과 없이 사고 당시의 현장 영상과 사진을 퍼뜨리는 행위는 고인과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2차·3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며 "우리가 모두 시민 의식을 발휘해 추가적인 유포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참사의 피해자 가운데 20대가 많았던 만큼 또래 젊은층에서도 적지 않은 충격을 호소한다. 대학생들이 주로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사고와 관련한 글이 많이 올라오지만, 막상 친구들끼리 직접 만나서는 말을 아끼고 조심하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생 김모(21) 씨는 "이태원 골목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친구가 연락이 뜸해졌는데, (사고 이후) 아무래도 많이 힘든 것 같다"면서 "학교에 무단결석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말도 들리고, 실제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나 유가족도 있다 보니 아무래도 다들 걱정하고 조심한다"고 전했다.


다른 대학생 김정훈(23) 씨는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별 생각 없이 SNS를 켰는데 블러(흐리게 가림) 처리되지 않은 사고 현장 영상이 나왔다"며 "영상을 보고서야 사고 사실을 알았고, 참혹한 광경을 사진으로 찍어 그대로 올려놓은 데 너무 놀라 서둘러 계정을 모두 언팔로우했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에도 예상치 못하게 충격적인 장면을 목도한 경우가 많다"면서 "이태원은 평소에도 친구들끼리 모이면 한 번씩 들르던 곳인데 언제든, 누구나 갈 수 있던 장소에서 이런 사고가 났다는 게 마음이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함께 이겨냅시다]"출근길 꽉 찬 지하철 무서워"…'집단 트라우마'에 빠진 대한민국 이태원 대형 압사 참사로 인한 국가애도기간이 이어지고 있는 1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심리지원 상담소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강진형 기자aymsdream@
불안·우울 인정하고 스스로 다독여야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회재난 후에 나타나는 정신건강 문제 중에 가장 대표적인 증세로 불안감과 우울함을 지목했다. 정서적 충격이 심할 경우 가슴이 답답하거나 잠을 못 이루고, 소화가 잘 안 되는 등의 신체적인 반응도 나타날 수 있다.


이현주 서울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전임의는 "간접경험도 직접경험 못지않게 심리적 충격이 있을 수 있어 최대한 언론이나 사진 노출을 피하는 것이 좋다"며 "다만 아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회피하기보단 하나둘씩 자기 페이스를 맞춰서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회복에 더 도움이 많이 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느끼는 우울, 불안, 공포 등의 감정에 너무 몰입하지 말고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생각하면서 지내는 것이 회복이 더 빠르다는 것이다.


이 전임의는 "유가족이든, 간접경험자이든 회복 시간은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 기간을 겪어야 한다"며 "만일 시간이 지나도 우울, 불안이 악화돼 일상생활을 저해할 정도라면 반드시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는 참사에 대한 트라우마로 괴로울 땐 심호흡과 복식호흡을 크게 하고, 발뒤꿈치를 들었다가 내려놓으며 바닥을 느끼거나(착지법), 팔을 가슴 위에서 교차시켜 양측 팔뚝을 10~15번 두드리는(나비 포옹법) 등 스스로 마음을 안정시키는 방법도 시도해 볼 것을 권했다.



보건복지부는 국가트라우마센터 내 '이태원사고 통합심리지원단'을 구성하고 녹사평역 인근에서 유가족과 부상자, 목격자 등에 대한 심리지원에 나섰다. 서울시청 분향소 바로 옆에도 서울시 통합심리지원단이 운영하는 현장상담소가 마련됐다. 전경선 국가트라우마센터 팀장은 "유가족과 부상자 등 사고 현장에서 직접 피해를 보고 트라우마를 겪는 분들의 심리 지원을 우선순위로 하고 있지만, 방송이나 SNS 영상 등을 보고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이나 일반 시민들까지 원하는 모두에게 상담을 제공한다"고 알렸다.


[함께 이겨냅시다]"출근길 꽉 찬 지하철 무서워"…'집단 트라우마'에 빠진 대한민국
[함께 이겨냅시다]"출근길 꽉 찬 지하철 무서워"…'집단 트라우마'에 빠진 대한민국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안정화 기법 (출처: 재난 정신건강지원 정보콘텐츠 및 플랫폼 개발 연구)
[함께 이겨냅시다]"출근길 꽉 찬 지하철 무서워"…'집단 트라우마'에 빠진 대한민국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김영원 기자 fore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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