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 손 컬럼비아대 버나드 칼리지 심리학 교수
'2022여성리더스포럼' 특별강연
'여자의 심리, 여자의 용기'
이민 2세·여성… "완벽한 척 가면 썼다"
"가면 들통날까 문제 제기 못하기도"
한국, 서로 가면 쓴 것 알아
"서로 용서하기 힘든 사회 됐다"
"가면 벗을 용기 가져야"
'안전한 들키기' 시도해야
[아시아경제 이춘희 기자] "서로가 가면을 쓰고 있으면 믿기도, 용서하기도 힘들다.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보여줘야 한다."
1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2여성리더스포럼'에서 '여자의 심리, 여자의 용기'라는 제목으로 특별강연을 맡은 리사 손 컬럼비아대 버나드 칼리지 심리학 교수는 "정말 용기 없는 사람이라서 지금도 너무 떨린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여기 계신 분들이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용기를 얻을 수 있는지 말하고 싶다"며 강연을 시작했다.
미국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 2세인 손 교수는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로 운을 뗐다. 그는 "학교를 좋아했지만,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너무 빨리 알게 됐다"며 "보통 남자아이들이 좋아했던 격한 스포츠를 즐겼지만 친구들은 '리사, 네가 왜 여기 있어?'라고 묻고는 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에서) 아시아인 되기', '여자 되기', '한국인 되기'와 같은 심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자신을 회고했다.
우선 아시아인 되기에 대해 손 교수는 "동양인들에 대해 미국에서 '노력으로 성공을 했다', '자기만의 노력으로 존경받는다', '남을 귀찮지 않다'고 한다"며 "칭찬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위험한 말"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계속 완벽한 척, 괜찮은 척을 해야 하므로 오히려 도움을 받지 못한다"며 "백인들도 이를 알고 있으니까 아시아인이 도와달라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고는 한다"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이를 '가면'으로 표현했다. 괜찮은 척, 완벽한 척을 위한 가면을 쓴 '임포스터(impostor)'로 동양인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 역시 이러한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매일 혼자서 울면서 밤새워 공부했다"며 "똑똑한 척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타고났다는 척을 하기 위해서 노력하면서도 그 노력을 숨겨야만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손 교수는 여성들 역시 완벽하기 위한 가면을 쓴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러한 문제들이 미국 사회에서 동양 여자들에게는 이중의 고난으로 작용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유리천장'뿐만 아니라 '대나무 천장(bamboo ceiling)'까지 동시에 겪고 있다는 것이다. 손 교수는 "계속 완벽한 척을 하다 보니 실수를 겁내 나중에는 도망가는 경우도 잦다"고 우려를 표했다.
또 이러한 가면들이 결국 차별을 받아들이게 만든다고도 설명했다. 그는 "성별 임금 격차가 한국이 제일 크지만 이를 사장한테 월급이 낮다고 제기하지 못한다"며 그 원인에 대해 "들키게 될까 두려워서"라고 분석했다. 문제를 제기한 후 '왜 임금을 올려줘야 하냐'고 반박이 들어왔을 때 자신이 그동안 완벽한 척 해왔던 것이 들통날까 봐 문제를 아예 제기하지 못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손 교수는 한국이 임포스터들이 만연한 사회라고 짚었다. 그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의 사례를 들었다. 서로서로 믿을지, 배신할지 알 수 없는 게임에서 상대방의 선택을 알고 난 후 한국인과 미국인의 선택이 완전히 딴 판이었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을 배신한 후 '속였다'며 행복한 표정을 지을 때와 '후회한다'며 미안한 표정을 지을 때 미국인은 표정에 크게 영향을 받았지만 한국인은 전혀 영향이 없이 오직 배신했다는 행동만을 보고 표정과 관계없이 복수했다. 또 상대방이 한국인이냐 미국인이냐에 따라서도 한국인들의 반응은 상이했다. 참여자들은 미국인 상대는 표정을 믿었지만, 한국인 상대는 여전히 행동만을 봤다.
손 교수는 이에 대해 "한국인들은 서로가 다 가면을 썼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라며 "한국 사회는 서로를 용서하기가 힘든 사회"라고 지적했다. 그 결과 "실수를 용서받을 수 없기 때문에 실수하면 안 되는 사회가 됐다"며 "서로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조심스럽게 살아가야만 하는 사회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손 교수는 다시 강연의 처음으로 돌아갔다. 그는 "스피치를 시작할 때 처음 한 말이 '떨린다'였다"며 "떨린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안전하게 들킬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찍 들키고, 일찍 실수함으로써 쉽게 용서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완벽하지 않은 자기 자신을 보여주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며 "그러면 자신도 가면을 벗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조언을 건넸다.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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