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인권 보호하면서 피해자 안전 보호는 전혀 안 돼"
[아시아경제 박현주 기자]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발생한 스토킹 살인사건과 관련해 "우리나라의 사법제도가 피고인에게 얼마나 인권 보호적인지를 시사하는 사건"이라면서 "피해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피해자 중심의 사법제도는 전혀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14일 밤 9시쯤 전모씨(31)는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역무원 A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피해자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전씨는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인 A씨를 상대로 불법 촬영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고 만남을 강요했으며, 지속적으로 스토킹해왔다.
이 교수는 1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 사건은 스토킹 범죄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면서 "미리 뭔가 조치를 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가족의 이야기에 따르면 피해자는 입사 이후 내내 스토킹을 당했고, 지난해 10월에 피의자를 불법촬영죄로 신고했다"며 "그 사건 이후로 (피의자는) 피해자를 미행하고 괴롭혀 스토킹으로 신고돼 지난 2월에는 사건화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행 스토킹 처벌법의 문제점으로 '친고죄'를 들었다. 피해자와 합의하면 사건이 철회되기 때문에 가해자들이 합의해달라며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스토킹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스토커들이 피해자를 쫓아다니면서 계속 합의 종용하고 협박한다는 이야기는 입법 당시부터 얘기가 돼왔고, 지난 6월에도 다시 한번 문제가 됐다"며 "지난 6월에라도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구속했다면 아마 이 피해자는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전씨의 심리 상태에 대해 "피고인이 인지 왜곡부터 시작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사건 발생 당일은 전씨에 대한 1심 선고가 내려지기 전날이었다. 전씨는 이날 낮 법원에 두 달 치 반성문을 제출했고, 같은날 밤 9시쯤 A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이 사건이) 우리나라의 사법제도, 재판 절차가 피고인에게 얼마나 인권 보호적인지를 시사하는 여러 포인트를 다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피고인에게 (자신의 범죄를) 방어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기회를 다 준다"며 "상습 스토킹인데도 구속영장 청구도 하지 않고, 주소가 분명하고 직업이 분명했다는 이유로 재판에서 유리할 수 있는 정황을 내도록 기회를 다 준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피의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최대한 배려했고, 경찰도 법원도 반성문을 마지막까지 받아주면서 불구속 상태에서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행사하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그러나 피해자에 대한 보호는 어디에서도 제대로 된 적 없다"고 지적했다. 피해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피해자 중심의 사법제도는 전혀 아니구나, 이런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피해자 A씨는 전씨를 두 차례 고소했지만 전씨는 구속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27일 첫 고소 당시 경찰은 전씨를 긴급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경찰은 피해자를 신변보호 112시스템에 등록하는 등 안전조치를 한 달간 실시했으나, 잠정조치나 스마트워치 지급, 연계 순찰 등 다른 조치는 피해자가 원치 않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수사가 개시되면서 전씨는 지난해 10월13일 직위 해제됐으나, 회사 내부망을 통해 피해자의 근무지를 파악했고 문자 메시지 등을 이용해 스토킹을 저질렀다. 이에 지난 1월27일 A씨는 전씨를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경찰에 재차 고소했으나,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이 교수는 "가해자를 관리해야지 왜 피해자를 감시하는 정책을 계속 펴야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코로나19 감염자도 집 바깥으로 나가면 지자체에서 전화가 오고 했다. 그 정도의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텐데 스토커의 휴대전화에 그런 종류의 앱을 깔아서 지리적으로 피해자에게 계속 접근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그런 방안은 왜 생각하지 않는지 그게 이해가 잘 안 된다"고 말했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