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 편집자주
“단정짓지 않고, 해결하지 않고, 공언하지 않는”(시인 김혜순), “너무나 많이, 정확하게 읽는”(평론가 서영채) 평론가 권희철. 예외적으로 탁월하고도 믿음직한 평론가의 탄생을 알린 그의 첫 책 ‘당신의 얼굴이 되어라’를 수식한 저 문장은, 9년 만에 선보이는 두번째 평론집 ‘정화된 밤’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현실과 문학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바탕으로 쓰인 더욱 단단하고 깊어진 글을, 한 젊은 평론가가 명실상부 한국문학장의 주춧돌로 조형되어가는 과정을 우리는 이 책에서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은 그 자체로 시가 될 수 없다, 고 나는 생각한다. 시라는 것이 꼭 의미심장한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한다거나, 초월적인 것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거나, 별스럽게 아름다운 것에 대한 도취로 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루하고 무의미한 반복처럼 보이는 일상 안에서 자기만의 미로를 만들고 그 미로를 통과하는 중에 더이상 지루하고 무의미한 반복이 아닌 체험을 이끌어내며 삶을 확장하지 않는 이상, 일상은 진부함의 감옥이 되기 쉽고, 그런 한에서 시는 쓰여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일상이 그 자체로 시가 될 수 있다’는 말은 미로 만들기라는 과제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핑곗거리가 되기 쉽고, 무기력한 삶에 대한 기만적인 장식이자 옹호가 되기 쉽다고도 덧붙이고 싶다. _「개에 관한 명상」에서(75쪽)
문학은, 그것이 탁월한 것일수록, 결코 무해한 것이 아니다. 문학은 ‘행위’하기 때문이다. 약간의 과장이 허락된다면, 문학은 ‘폭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학이 삶의 운동 전체에 비춰볼 때 어떤 순간의 이해와 규정들이 실상은 ‘허위’임을 인정하라고 강요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이해와 규정은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순에 직면하여 이해할 수 없는 낯선 것들의 곁에 함께 머무르면서 낯선 것들과 익숙한 것들을 연결하는 알려지지 않은 통로를 뚫는 고된 노동에 의해 간신히 얻어낼 수 있는 것인데, 그러한 노동을 면제받고자 하는 우리를 문학이 때때로 꾸짖고 수치심을 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간신히 얻어낸 그 새로운 이해와 규정을 새로운 이행의 과정에 비춰 허위에 불과하다면서 우리에게서 다시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_「착화」에서(135~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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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된 밤 | 권희철 지음 | 문학동네 | 544쪽 | 2만2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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