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그녀를 여경이 아닌, 경찰관으로 바랐듯이 말이다"
[아시아경제 김소영 기자] 상소문 형식의 국민청원 '시무7조'로 화제를 모은 논객 조은산이 최근 "'페미니즘'이 싫으면 여성을 죽이지 말라"고 밝힌 장혜영 정의당 의원을 향해 "좀 크게 보라"고 일침을 가했다.
조은산은 지난 26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당신은 국회의원이지, 여성 의원이 아니다. 세상이 그녀를 여경이 아닌, 경찰관으로 바랐듯이 말이다"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앞서 지난 20일 장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별통보 했다고 칼로 찌르고 19층에서 밀어 죽이는 세상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페미니즘이 싫습니까? 그럼 여성을 죽이지 마세요. 여성의 안전 보장에 앞장서라"고 언급했다.
이에 조은산은 "나는 이게 공당의 정치인이자 입법부의 상징인 현역 국회의원이 '신변 보호까지 요청한 전 애인을 찾아가 칼로 찌른 후 19층에서 밀어 살해한 오피스텔 살인 사건'을 두고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식의 발언은 근본적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사건의 본질은 단순히 '이별 통보'를 했다는 이유로 여성이 남성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사건은 피해자가 '경찰에 신변 보호 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피살될 수밖에 없었던 제도적 허점을 노출한 비극이며, 사건의 저변에는 법규의 미비와 도덕의 마비, 국가 공권력과 기술의 한계 같은 다양한 문제점들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이렇게 다짜고짜 '페미니즘'부터 들고 나온다면, 이제 남은 건 증오와 분노에 휩싸여 서로의 얼굴에 똥 덩어리를 투척하는 남녀들과 언론을 도배한 페미니즘에 대한 해묵은 논쟁뿐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그리고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건전한 논의와 해법의 제기 가능성은 페미니즘에서 비롯된 증오의 논리에 묻혀 매몰된다. 국회의원은 민심을 얻기 위해 법안을 내는 의정인이지, 관심을 얻기 위해 증오를 내다 파는 선동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조은산은 "물론 장혜영 의원이 스토킹 처벌법 대표 발의 등 사회 안전망 구축에 힘 써온 건 높이 평가할 만한 부분"이라면서도 "그러나 결과적으로 특별법 제정에도 불구하고 그 효용은 크지 않다는 게 증명됐다. 그러므로 이 사건에 대한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허용된 올바른 접근법은 먼저 '남성이 여성을 죽였다'는 근시안적이고 편협한 방식의 접근에서 벗어나는 데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식인으로서 현상을 고찰하고 정치인으로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여성을 죽이지 마세요'라는 애원조의 말은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야각을 최대치로 좁혔을 때나 가능한 말"이라고 주장했다.
또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과 '정인이 사건'을 들며 "위의 두 사건 모두 여성이 가해자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두고 '여성이 아이를 죽였다'고 먼저 말하지 않는다. 또한 두 사건 모두 여성이 피해자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두고 '여성이 여성을 죽였다'고 먼저 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 이유는, 특정인이 특정인을 죽였다는 사실보다 더욱 가혹한 현실이, 그 많은 논란과 논쟁에도 불구하고 소년법은 결국 개정되지 못했으며, 16개월 아기의 죽음 이후로도 학대와 방임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세상 이곳저곳에서 여전히 죽어가고 있는 현실이 가장 먼저 가슴 아파서다"라고 말했다.
층간소음 살인미수 사건을 두고는 "이제 오늘, 얼마 전 발생한 층간소음 살인미수 사건으로 대한민국은 증오로 가득 차 있다. 이웃 주민을 향해 칼을 휘두른 범죄자를 앞에 두고 신참 여경이 줄행랑을 쳤다는 이유"라며 "그러나 나는 이것을 두고 '안티 페미니즘'을 먼저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증오로 뒤덮인 세상은 모두의 눈을 멀게 만든다. 살인미수로 입건된 위 피의자가 확정 판결을 받고 난 이후, 뇌사 상태에 빠진 피해자가 결국 사망하더라도 살인죄의 양형 기준으로 그를 다시 법정에 세울 수 없다. 일사부재리의 원칙 때문이다. 결국 조장된 분노에 휩싸인 대중은 아무도 이 문제를 말하고 있지 않다. 이것이 증오가 가진 힘"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때론 증오는 삶을 바꾸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저 자신을 향한 증오는 결국 저 스스로를 망친다. 무도한 권력을 향해서가 아닌, 국민이 같은 국민을 향해 내쏟는 증오가 바로 그런 것"이라며 "그것은 세상을 가르는 분열의 원동력이 된다. 설익은 정치는 그것을 조장하며 설익은 표를 받아 간다. 무르익은 정치는 결코 그러면 안 될 일이다. 최소한 '정의'라는 단어를 당명에 박아넣은, 바로 그 당이라면 말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소영 기자 sozero81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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