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후보자 시절 게임업계와의 간담회에서 게임 규제와 관련 자율규제가 우선돼야 한다고 공약했다. 이에 따라 2017년 하반기에 문화체육관광부에 ‘게임규제개선 협의체’가 꾸려졌고, 필자는 이 협의체의 좌장을 맡아 약 6개월에 걸쳐 게임규제 개선에 관한 다양한 논의와 정책개선방안이 도출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이 협의체 논의의 결과로 2018년 3월 한국게임산업협회와 문체부 사이에 건강한 게임이용문화 조성, 게임생태계 발전·청소년보호를 위한 협약서가 체결됐다.
협약서 제2조에 따르면 게임산업계의 자율규제가 정착될 수 있도록 협조하며, 게임 규제 등에 대한 정책 수립 시 게임산업계의 자율규제 이행상황을 고려하도록 돼 있다. 그리고 게임산업협회는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자율규제가 실효성을 갖도록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해 실행하고, 국민이 건전하게 게임을 이용할 수 있도록 자율규제를 성실히 이행하도록 돼 있다. 한국게임산업협회와 문체부 사이에 체결된 협약을 실천하기 위해 기존에 이미 적용되고 있던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를 보다 더 강화하는 차원에서 2018년 11월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에 대한 독립적인 감시기구이자 게임계 최초의 자율규제기구인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가 출범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오는 12월부터는 기존보다 확대되고 강화된 자율규제가 적용될 예정이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게임법 전면 개정안이 국회에 제안됐다. 2006년에 제정된 현행 게임법이 급변하는 게임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게임산업 진흥을 위한 지원책이 모호하고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제를 다수 담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했다. 게임문화 및 게임산업의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게임이용자 보호를 강화하며, 불합리한 제도를 정비하는 등 건강한 게임 생태계를 조성하려는 것이 제안이유로 제시되고 있다. 문제는 이 게임법 개정안의 내용 중 현재 자율규제가 적용되고 있는 확률형 아이템 확률 정보 공개에 대해서 법적 규제로 전환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게임법 전면 개정안이 비록 의원입법의 형식을 빌었지만 사실상 정부입법이라는 점에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서는 자율규제가 우선적으로 적용되도록 한 약속을 정부가 먼저 깬 것이고, 정부영역과 시장영역이 체결한 2018년도의 협약 위반이다. 정말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자율규제가 실효성이 없어서 현재의 자율규제를 법적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면, 정책파트너인 시장영역과 진지하게 논의를 했어야 했고, 논의과정에서 법적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과학적 근거를 정부가 제시했어야 했다. 그동안 이 문제를 게임산업계와 진지하게 논의하는 과정이 생략됐으며,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법적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지도 못하다. 이와 같은 일관성 없는 게임 규제정책은 바로 게임 규제에 대한 원칙과 철학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뉴노멀 시대, 한국판 뉴딜, 그린사회 등 현 정부는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새로운 시대나 사회에서 게임산업이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예측이나 기대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단순히 구호나 말로만 새로운 시대나 사회가 도래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시대나 사회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특히 정부가 게임 규제를 바라보는 인식이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나 사회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게임 규제에 대한 일관된 원칙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
황성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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